터키, 유혈 충돌 중동의 중재자로 나서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50호 35면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으로 또다시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팔레스타인의 물리적 공격에 이스라엘의 대대적 보복이란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다. ‘유럽에서 학살당해 조상 땅에 피신한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하나다. 또 ‘제국주의의 힘을 빌어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국가’라는 이미지도 있다.


양측의 충돌을 바라보는 중동의 맹주 터키의 입장은 무엇일까. 터키 국민은 이스라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지만 동시에 터키 정부는 이스라엘과 가까운 서구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싶어 한다.


때문에 터키 입장에서 대 이스라엘 외교는 쉽지 않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국제 정치와 국내 정치가 서로 부딪히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터키와 이스라엘 관계는 출발이 나쁘지 않았다. 15세기 말 스페인 왕국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아랍 세력을 쫓아내고 권력을 잡으면서 현지에 살던 20만 명의 유대인에게는 두 개의 선택권이 주어졌다. 하나는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현지를 떠나는 것이었다.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은 “유대교도를 죽이지 말라”고 스페인에 요청하고 스페인에 배를 보내 다수의 유대인을 터키 대도시에 이주시켰다.


뿐만 아니라 23년에 수립된 터키공화국은 이스라엘이 48년에 건국하자 인구의 대다수가 무슬림인 국가로선 최초로 이스라엘 정부를 승인했다. 1차대전 때 아랍인들에게 배신당했다고 여기는 터키 국내의 반아랍 정서가 작용했다. 50년에는 양국이 대사관을 각각 열었다.


터키와 이스라엘 관계는 이스라엘이 67년 이집트와 시리아까지 공격하면서 흔들렸다. 90년대 들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협상이 시작되면서 터키와 이스라엘은 우호적인 관계를 회복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터키에 종교 색깔이 강한 정의개발당(AKP)이 집권하면서 양국 관계가 다시 악화됐다.


정의개발당이 한때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 중재자로 나섰지만 2008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격하면서 관계는 다시 악화됐다. 특히 이스라엘 군이 가자지구로 향하던 터키 구호선 마비 마르마라호를 공격해 9명이 숨지면서 양국 관계는 역대 최악 상태가 됐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국내 정치에서 떨어진 지지율을 올리는데 반이스라엘 정서를 이용한다.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 지역에서 생산되는 석유는 터키를 통해 이스라엘로 수송된다.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는 터키의 적이지만 경제적으로는 돈을 벌어주는 사업 파트너인 셈이다. 하지만 터키는 이 같은 이중적인 외교를 버리고 중동 문제에서 가능한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터키가 아랍과 이스라엘의 믿음직한 중재자가 돼야 한다.


알파고 시나씨터키 지한통신사 한국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