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서울시,전국 최초로 공공시설 자판기에서 탄산음료 판매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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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다음달부터 단계적으로 시청ㆍ구청 등 공공기관 청사와 지하철 역사 내에 설치된 자동판매기에서 탄산음료 판매를 금지한다. 김창보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19일 "탄산음료가 비만ㆍ당뇨ㆍ골다공증을 유발하는 등 시민 건강을 해친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라고 말했다. 자판기 탄산음료 판매제한은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이다.

"11월부터 동사무소·지하철 자판기 983대에서 단계적 퇴출"
"콜라·에너지 음료 해당…일부 탄산수도 포함"
"시민 건강 우선 vs 개인 선택권 침해" 의견 대립

이에 따라 콜라ㆍ사이다 같은 대표적인 탄산음료는 물론, 식품유형 상 탄산음료로 분류되는 핫식스ㆍ레드불 등 에너지 음료까지 공공시설 자판기에서 볼 수 없게 된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탄산수 관련 제품 중 탄산음료로 취급(식품첨가물 함유)되는 상품도 마찬가지다. 다만 ‘100% 탄산수’(천연 탄산수·탄산가스만 넣은 음용수) 제품은 판매제한 대상에서 제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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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공공기관 자판기(549대)는 시청ㆍ구청ㆍ동사무소 등 관공서를 포함해 서울대공원ㆍ어린이대공원에도 설치 되어 있다. 549대 중 서울시가 직영하는 자판기는 320대(58%), 민간 업체가 위탁 운영하는 자판기는 229대(42%)다. 직영 자판기에 대해선 11월부터 판매제한 조치를 시행하고, 위탁 운영 자판기는 내년 재계약을 하는 시점부터 판매를 제한할 계획이다.

서울 지하철(1~8호선) 내 자판기 434대도 내년부터 탄산음료 판매가 제한된다. '건강음료 위주로 판매하도록 한다'는 현행 지하철 자판기 임대차 계약 조건에 따라 탄산음료를 건강음료로 교체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간 회사가 직접 운영하는 9호선 소유 자판기(93대)에 대해 서울시가 이번 조치를 강제할 권한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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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서울시는 9호선 측에 현재 20% 수준인 탄산음료 진열비치율을 10% 이하로 낮추도록 권고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탄산음료 미판매 자판기에 '건강자판기' 표시를 부착하고 관련 캠페인도 진행한다. 잔여 계약기간 때문에 즉각적인 탄산음료 퇴출이 어려운 지하철 내 자판기에는 '탄산음료 판매 자판기' 스티커를 부착한다.

서울시의 이번 조치에 대해 시민단체ㆍ학계에선 의견이 엇갈린다. 김미리 녹색소비자연대 소비자정보교육부장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0년~2012년 한국 국민의 하루 음료 섭취량 1위는 탄산음료(41.7g)가 차지했다"면서 "지자체 차원에서 탄산음료 판매를 억제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탄산음료 1캔(250㎖)에는 설탕 10스푼에 해당하는 25.3g~32.8g의 당이 평균적으로 들어가 있다.

건국대 강황선(행정학과) 교수는 "정책의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개인의 선택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탄산음료를 자판기에서 퇴출했다 하더라도, 관공서 내 매점ㆍ지하철 편의점에서 탄산음료를 계속 판다면 정책의 실효성도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시 조례상 지하철 자판기의 운영권은 장애인ㆍ기초생활수급자에게 우선적으로 맡기게 되어 있다"면서 "자판기에서 탄산음료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 우려스럽다는 의견도 있다"고 했다. 이미 초ㆍ중ㆍ고교 등 학교 주변에선 탄산음료 판매가 제한 돼 있다. 지난해 시행된 어린이식생활안전관리법은 학교 내부와 주변 어린이식품안전보호구역 내에서 탄산음료(고열량저영약식품) 판매를 금지한다. 지난 2일에도 식품의약안전처는 "2017년부터 전국 초ㆍ중ㆍ고교에 탄산음료와 커피 자판기 설치 자체를 금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탄산음료 판매금지 조치를 놓고 미국에선 논란이 진행 중이다. 2013년 미국 뉴욕시 건강국은 '식당·극장 등에서 대용량(470㎖) 탄산음료를 판매할 수 없다'는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음료업체에서 이에 반발하는 소송을 냈고, 지난해 6월 뉴욕주 대법원은 해당 법안에 대해 위법 판결을 내렸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의회는 탄산음료에 주의 경고문을 붙이고 시 예산으로 탄산음료를 구매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사진=탄산음료가 비치된 서울시청사 자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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