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우승도 못한 벨기에가 FIFA랭킹 1위, 왜?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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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가 유로 예선에서 이스라엘을 꺾으면서 오는 11월 FIFA랭킹 1위에 오릅니다. 에당 아자르, 케빈 데 브루잉, 뱅상 콤파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상위권 팀에서 에이스 노릇을 하는 선수들이 많긴 합니다. 유로 예선에서도 붙었다 하면 웬만하면 지지 않죠.

그렇다 해도 2014월드컵 우승은 커녕 8강에서 탈락했고, 메이저 대회 우승경험도 없는데 어떻게 FIFA 랭킹 1위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그건 FIFA랭킹 산정 방식에 숨은 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각 국가는 A매치 경기 결과에 따라 포인트를 받습니다. 최근 4년 내 치른 모든 경기의 포인트들을 연도별로 평균 낸 뒤 연도별 가중치를 부여해서 합산합니다. 이 점수에 따라 FIFA랭킹이 매겨집니다.

경기당 포인트 P=M×I×T×C로 계산됩니다 M은 승점, I는 경기의 중요도, T는 상대팀의 강도, C는 대륙 가중치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벨기에가 이스라엘과의 경기에서 이겨 얻은 포인트는 승점 3점 × 경기 중요도가 유로예선이라 2.5점× 이스라엘의 FIFA 랭킹이 47위이니 200-47인 153점 × 대륙 가중치가 유럽이므로 0.99로 계산됩니다. 이 경기에서 얻은 포인트는 무려 1136점입니다.

아까 FIFA랭킹 포인트가 경기에서 얻은 포인트를 평균한다고 말씀드렸죠? 따라서 경기만 많이 한다고 좋은 점수를 받는 게 아닙니다. 모든 경기를 다 이겨야 좋은 점수를 받습니다.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무조건 이기는 게 좋아요.
이기면 3점, 비기면 1점, 지면 0점이니까요. 지면 포인트를 하나도 못 가져가니 평균이 매우 떨어지겠죠. 비기는 것보다 이기는 건 3배의 점수를 더 챙깁니다.
벨기에는 올해 A 매치 8경기에서 7승 1패를 거뒀습니다. 승점으로 따지면 21점으로 경기당 평균 2.625점을 얻은 셈입니다. 독일은 올해 8경기에서 5승 1무 2패를 거뒀습니다. 총 16점으로 경기당 2점을 얻었습니다. 벨기에가 독일보다 31.25% 높은 점수를 얻은 거죠. 별 것 아닌 걸로 보이지만, 독일이 경기당 1000점을 얻는다고 했을 때 벨기에는 300점 이상 더 얻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포인트 10점으로 순위가 갈리는 FIFA 랭킹에서 이 차이는 엄청납니다.

2. 강팀과 붙어서 이겨야 해요.
상대팀 강도에 따라 얻는 점수가 달라진다고 말씀드렸죠. FIFA랭킹 1위에게 이기면 200점이나 얻습니다. 반면 150위 이하에게 이겨봤자 50점 밖에 못 얻습니다. 즉 이런 하위팀 상대로 승리한 것에 비해 1위에게 이기면 무려 점수를 4배나 더 가져갑니다.
벨기에는 올해 프랑스ㆍ보스니아ㆍ이스라엘 등 50위 안쪽 팀에게 연신 승리하며 150점 이상의 점수를 챙겼습니다. 100위권 팀을 상대한 우리에 비해 적어도 경기당 50%씩 높은 포인트를 가져갔다는 얘깁니다.

3. 월드컵ㆍ대륙컵 대회가 중요해요.
경기의 중요도에 따라 가중치가 다릅니다. 친선경기는 1점, 월드컵ㆍ대륙컵의 지역 예선은 2.5점입니다. 하지만 대륙컵 본선은 3점, 월드컵 본선은 4점이나 줍니다. 큰 경기에서 잘 해야 점수를 많이 벌죠.
벨기에는 월드컵에서 4승 1패를 기록하며 큰 점수를 챙겼습니다. 가중치가 2.5점인 유로 예선에서도 승리를 거듭해 높은 포인트를 유지했죠.

4. 유럽과 남미에 훨씬 유리해요
유럽과 남미의 국가들은 태생이 금수저라고 보면 됩니다. 남미팀끼리의 경기 가중치는 1점입니다. 즉 포인트를 에누리 없이 다 가져간다는 말입니다. 유럽팀끼리도 0.99로 거의 다 가져갑니다. 하지만 아시아ㆍ아프리카ㆍ오세아니아 등은 0.85로 점수에 큰 손해를 봅니다. FIFA는 대륙별 국가의 월드컵 성적을 바탕으로 이런 가중치를 만들어 놨습니다.
벨기에는 태생이 유럽이니 합산에도 유리합니다.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와 붙어도 불리한 포인트를 적용받습니다. 남미와 붙는다해도 1과 0.85의 평균인 0.925의 가중치를 받습니다. FIFA 랭킹 상위권에 유럽과 남미팀이 많은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5. 최근 성적이 좋을수록 유리해요.
최근 1년까지의 경기는 경기 포인트를 원점수 그대로 인정합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50%, 30%, 20%만 인정합니다. 4년이 넘어버리면 아무 점수도 인정하지 않아요. 그래서 월드컵 우승을 아무리 많이 해도 랭킹에는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최근 들어 승수를 쌓고 있는 벨기에 같은 신흥강호에게 유리한 거죠.

아, 참 그리고 한 가지. 큰 점수차로 이겨도, 원정에서 승리해도 포인트에는 영향이 없습니다. FIFA 랭킹 포인트는 여러 비판을 수용하며 계속 변화해 왔습니다. 지금도 FIFA랭킹이 현재의 축구 실력을 그대로 나타내주지는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죠. 나중에는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네요.

이제 큰 대회 우승 경험도 없는 벨기에가 FIFA랭킹 1위인 이유, 감이 좀 잡히시나요?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영상 정혁준·심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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