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北核규탄 성명' 채택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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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문제를 다루는 유엔 안보리의 시계 바늘이 빨리 돌아가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19일자에서 미국이 이달 내에 북핵을 규탄하는 안보리 의장 성명을 채택하기 위해 상임이사국에 대한 설득 작업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비토권을 가진 5개 이사국 중 중국.러시아가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미국의 의도가 달성될지는 미지수다. 북핵은 이라크 전쟁 문제에 이어 안보리를 달구는 주요 현안이 되고 있다. 각국의 입장을 알아본다.

▶ 중국=중국은 북핵 문제를 안보리에서 다루는 것에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또는 '시의 적절한지' 등 시점과 관련된 사항을 전제로 달고 있어 미묘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외교부 류젠차오(劉建超)대변인은 "북핵 문제에 안보리가 개입하는 것은 현재로선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어떤 국가도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 조치를 해서는 안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다른 외교부 대변인인 장치웨(章啓月)는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수단으로 북핵 문제를 풀자는 데엔 세계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으며, 이를 위해 베이징(北京) 3자 회담 등 물꼬가 트인 바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왕잉판(王英凡) 유엔 주재 중국 대사는 안보리가 대북 규탄 의장 성명을 채택하는 문제에 대해 18일 "북핵 문제를 다자 간 대화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성명 채택 추진이 시의적절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러시아=북핵 문제를 안보리에서 논의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며 관련 당사국 간의 대화와 외교적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고리 이바노프 외무장관은 18일 프놈펜 아세안 지역안보포럼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원칙적으로 북핵 문제를 안보리에서 논의할 수는 있으나 (현 단계에서) 압력이나 위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은 대화 분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바노프 장관은 "3자 회담이 되든, 다른 형식의 회담이 되든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지금까지 북핵 문제와 관련, ▶한반도 비핵화 유지▶북핵 문제의 평화적.외교적 해결 원칙을 주장해 왔다.

▶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는 북핵 문제가 안보리에 회부돼 있던 지난 4월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핵이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므로 어떤 형식이든 국제 사회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이라크 경우와 같이 무력을 사용하는 방식보다는 외교적 압력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영국이 강조하는 '국제 사회의 공동 대응'은 곧 유엔 같은 국제기구를 통한 대처다.

영국 외무부는 19일(현지시간)에도 안보리의 기능 및 회원국 확대(비토권 없는 상임이사국 5개국 추가)와 함께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을 막기 위한 특별기구인 '반(反) 대량살상무기 확산 위원회(Counter-Proliferation Committee.CPC)'의 신설을 제안했다.

▶ 프랑스=이라크 전쟁 때도 유엔 결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프랑스는 북핵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유엔 같은 국제기구에서 논의한다는 데 적극 찬성하고 있다.

그것이 미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하고 문제를 다자 간 협상 테이블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북 규탄 안보리 의장 성명에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프랑스는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대미관계 개선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미국과 보조를 맞추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16일 유럽연합(EU) 외무장관 회담에서 프랑스는 "대량살상무기 확산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무력 사용도 불사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런던=오병상, 베이징=유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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