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륜에 묻어나는 감성, 그게 재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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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박성연씨와 신관웅씨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노래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악보 한장 구하기 힘들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음표 하나, 가사 하나씩 손으로 옮겨 적었다. 한국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 계보의 첫 점을 직은 박성연(60)씨는 그렇게 재즈를 설립했다. 박씨가 만든 최초의 재즈클럽 '야누스'. 그곳에서 만난 또 다른 재즈 1세대가 피아니스트 신관웅(59)씨다. 이들은 22일 오후 8시 30분 서울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열리는 '포노 재즈 잇 업 라이브-야누스 레전트 콘서트' 무대에 선다. 재즈 잇 업 라이브는 매달 한차례씩 열리는 정기 재즈 콘서트. 재즈 평론가 남무성(38)씨가 해설을 곁들인다(02-6207-0255)

공연에 앞서 만난 이들이 풀어놓은 옛날 재즈와 요즘 재즈는 사뭇 달랐다.

한국 재즈는 전쟁터에서 핀 꽃이었다. 박씨는 오빠가 미8군 피엑스에서 사다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귀에 꽂고 다니며 AFKN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었다. 그땐 재즈인지도 몰랐지만 흠뻑 빠졌다. 신씨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클래식을 포기하는 바람에 재즈의 길로 접어들었다.

"피아노 아르바이트를 하러 미8군에 갔다가 처음 재즈 피아노를 들었어요. 화성.리듬.멜로디 등 음악의 3요소가 클래식과는 완전히 다른 신천지였어요."

재즈를 할 장소도 없던 그 시절, 맥주 홀을 찾아가 공짜로 재즈 공연을 열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공짜로 공연해줘) 고맙다"던 가게 주인들도 몇 번 지나면 "미안하다, 그만 하라"며 돌려보냈다. 연주를 하고 있어도 재즈란 음악이 생소했던 손님들은 "왜 계속 연습만 하냐"며 항의했던 것.

박씨가 "실컷 재즈를 하고 싶어서" 재즈 클럽 '야누스'를 만든 게 1978년. 신씨를 비롯한 재즈인이 몰려왔다. 처음엔 손님보다 연주자가 더 많았다. 연주자들은 해질 무렵이면 "벽돌 지러 간다(돈 벌러 간다)"며 카바레로 향했다. 그렇게 재즈에 바친 세월이 30여 년. 여건은 아주 좋아졌다. 그러나 1세대들이 느끼는 아쉬움도 그만큼 많았다.

"우리는 어려운 환경에서 해오다 보니 음악에서 인간미와 철학이 묻어 나오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돈도 많고 하고 싶은 건 마음껏 해서인지 그런 걸 찾기 힘들어요."(신관웅)

"미대 나왔다고 화가는 아니듯, 버클리 음대 나왔다고 재즈 아티스트가 되는 건 아니죠. 재즈는 학벌보다 어떤 연주자와 활동했느냐가 중요하거든요."(박성연)

"다들 강단에만 서려고 하죠. 설 무대가 없다지만 연주할 장소를 스스로 찾아다니는 것도 재즈 뮤지션이 되기 위한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콘서트만 하고 클럽 공연은 안 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재즈는 클럽에서 태어난 음악인걸요."(신)

남무성씨는 이 둘을 이렇게 평했다.

"테크닉이 뛰어난 젊은 재즈인은 많지만 이렇게 감성이 뛰어나고 자신만의 음악성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연륜에서 묻어나는 감성과 관록, 그게 바로 재즈입니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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