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韓·日 FTA 변형은 안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양국 정상이 FTA의 조기 추진에 합의함으로써 지지부진하던 협상의 발판이 마련된 셈이지만 그에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FTA 협상이 원점에서 맴돌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한국과 일본이 처한 현실을 보면 그동안 협상이 원점에서 맴돌았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일본이 싱가포르.멕시코에 이어 한국을 세번째 대상국으로 정하고 적극 나서는 이유는 한마디로 득이 되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 日 비관세장벽 해소는 어떻게

한국(7.9%)과 일본(2.9%)의 관세율 차이와 산업경쟁력 수준을 감안할 때 일본으로서는 적지 않은 무역 이득을 챙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FTA 체결을 계기로 동북아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면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고, 장기불황을 겪고 있는 자국 경제의 돌파구로 이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일본에 비해 한국의 실정은 간단치 않은 게 사실이다. 일본과의 기술력 격차로 인한 일부 취약산업의 피해와 무역역조 심화가 우려됨에 따라 한.일 FTA를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기계.전자 등 타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에서 반발하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렇듯 FTA 체결에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는 무역역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일 양국의 공동 노력이 시급하다. 한국은 일본의 요구 사항인 투자여건 개선에 적극 나서는 한편 일본은 반대로 한국 측이 걱정하고 있는 비관세장벽 해소를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을 심도있게 검토해야 한다.

먼저 일본의 대한(對韓)투자에 큰 걸림돌이 돼 왔던 노사 문제는 이번 방일을 통해 盧대통령이 1~2년 내 신뢰와 협력의 노사 문화를 정착시키고, 불법과 폭력은 엄단할 것을 약속한 만큼 논의의 단초를 찾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 같은 국내 투자환경 개선 노력은 일본의 비관세장벽 해소에 대한 입장 표명과 연계돼야 한다. 일본의 비관세장벽 해소 노력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진행되는 FTA 협상은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령이나 제도뿐 아니라 담합적 상관행이나 배타적 유통질서 등 일본의 높은 비관세장벽은 외국 상품이 뚫기 어려운 철옹성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배타적인 상관행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최소한 수입할당제와 같은 제도적 장벽의 철폐에 대해선 일본 정부의 확실한 개선 의지가 표명돼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양측이 일본의 비관세장벽 문제에 대해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 협상이 체결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저절로 소멸되는 관세 문제와 달리 비관세장벽은 한.일 간 경제 협력에 두고두고 걸림돌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또 하나 유념해야 할 것은 한.일 FTA가 농업을 포함한 전 산업을 포괄하는 일괄타결방식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일본은 자국이 불리한 농업부문을 배제하고 타협이 손쉬운 산업부문부터 시작하자는 입장이다.

*** 농업 포함 일괄타결방식 돼야

한국이 양국 간 농업교역으로 한 해 4억달러가량의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손해볼 수 있는 부문을 가능한 한 뒤로 미루고 우선 실리부터 취하고 보자는 전략인 셈이다. 한.일 FTA는 일.싱가포르 경제연계협정(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과 같은 변형된 형태가 돼서는 안 되며, 특히 농업을 배제하는 비포괄적 방식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계 경제가 점차 블록화돼 가는 흐름을 우리만 거스를 수는 없다. 그러나 FTA의 기본정신은 어디까지나 협정체결 당사국에 균형적 이익을 가져다 줘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투자여건 개선과 함께 실질적 시장개방을 위한 일본의 진지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노력이 없다면 한.일 두 나라는 가깝고도 먼 나라에서 더욱 멀고도 먼 나라가 되고 말 것이다.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