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3. 끝없는 편력 <13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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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내용인즉 빵 만드는 공장인데 일꾼을 구한다는 것이며 숙식을 제공하고 급료도 준다는 거였다. 나는 주소를 적어 가지고 길을 물어 찾아갔다. 당시만 해도 옛 성읍이던 진주 시내가 빤해서 남강 주위의 다리를 건너 오가면 거의가 걸어서 닿을 만한 거리였다. 옥봉 쪽이든가 상봉 방향이든가 하여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주택가를 벗어난 시장 가까운 곳의 골목 안에 그 집이 있었다.

요즈음이야 시장 상가 모퉁이에는 떡집이 더 많고 제과점이나 빵집은 번화가에 있기 마련이지만, 당시에는 전후 십여 년 이상을 구호양식이라고 역시 악수표 밀가루며, 옥수수 가루, 우유 가루 등속이 시중에 많이 흘러나와 시장 곳곳마다 제빵소가 많이 생겨났다. 나도 중학생 때까지 대영빵이라는 점심대용의 빵을 따끈히 끓인 탈지 분유와 함께 군것질로 사 먹던 기억이 있다. 판자문에 조그맣게 '중앙제빵' 이라고 쓴 정사각형의 나무 간판이 붙어 있었다.

문을 밀고 들어가니 막바로 제빵 작업장이었는데 석탄으로 불을 때는 아궁이와 대형 철제 오븐과 가마솥이 두 개 나란히 붙어 있었고, 앞쪽은 채광이 잘되는 일본 가옥식의 격자 유리창문이 연이어 달렸으며 바깥으로 앞마당이 보였다. 아궁이에서 좀 떨어져서 두꺼운 널판으로 짜 맞춘 조리대가 있고 그 위에 반죽이 얹혀 있었다. 여자처럼 타월을 머리에 둘러쓴 남자와 아주머니 두 사람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바닥은 시멘트였는데 곳곳마다 온통 밀가루와 물이 번져서 질척거렸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서 기웃거리자 커다란 밀가루 반죽 덩어리를 치대고 있던 남자가 크게 외쳤다.

- 와? 빵 띠갈라카나?

- 아뇨, 저어 사람을 구한다구 그래서….

- 서울 말 포떼 나네. 니 서울서 왔드나?

- 예에.

- 안에 드가바라.

주뼛거리며 작업장을 지나 격자 유리문을 열고 안마당으로 들어서서 두리번거리는데 뚱뚱한 아주머니가 수도 앞에서 함지에 뭔가를 씻고 있었다. 그녀도 머리에 수건을 쓰고 몸뻬 차림에 앞치마를 둘렀다. 그녀가 씻고 있는 것은 팥이었다. 일일이 조리로 팥을 일어서 다른 함지에 옮겨 담는 동작을 그대로 하면서 그녀는 오히려 내 말을 기다리는 듯 올려다보기만 했다. 나는 우선 인사를 꾸벅 했다.

- 일할 사람을 구한다구 그래서요.

- 학생인갑다?

- 예 휴학 중인데요.

- 우짜노, 마 앞번에 사람을 썼다 아이가.

그녀는 여전히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희미하게 '아 예' 중얼거리고는 잠시 섰다가 다시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유리문에까지 걸어갔는데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 학생아 나 좀 보그래이.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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