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칼럼] 탈북자들과 함께 외로움 달래는 한국의 추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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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한국의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인 추석이 돌아왔다. 한국인 대부분은 가족과 함께 추석을 보내려고 고향을 찾아간다. 이맘때면 대도시의 식당·편의점 뿐 아니라 심지어 햄버거 가게까지 사실상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

솔직히 5년 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추석 같은 큰 명절이 돌아오면 나는 졸지에 '이산가족' 같은 외톨이 신세가 됐다. 주변 친구들이나 같이 일을 해온 직원들이 가족·친지를 만나러 썰물처럼 떠났기 때문이다. 대도시에 혼자 남아 긴 명절 연휴를 보내려니 정말 외로웠다.

나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아리랑 인스티튜트'(Arirang Institute)란 비영리단체에서 서울지부장으로 일하면서 북한대학원대학에서 박사과정 공부도 하고 있다. 최근 들어 나는 북한에서 온 탈북자 친구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한국의 명절을 보내면서 외로움을 달랜다.

미국 버지니아 주가 고향인 나는 한국에 아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족도 없다. 탈북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과 함께 삼겹살 파티도 하고 축구도 한다. 그러다 보면 외로움을 덜고 마음의 위안도 얻는다. 한국에서 외톨이인 미국인과 남한에서 외톨이인 탈북자가 만나 '또 하나의 가족'처럼 화기애애하게 명절을 보내는 것이다. 명절을 같이 보내자고 나를 초대해준 탈북자 친구들이 너무 감사하다. 이번에도 모일 예정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한국 사람들 중에는 명절이 돌아와도 고향에 가는 것을 기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컨대 고향이 지방인 서울 사는 젊은 여성들이 귀향을 기피하는 이유는 몇 가지 있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 불쑥 던지는 불편한 질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고향 가기 겁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취업·결혼 관련 질문 때문에 한두 번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예 명절이 되더라도 “당직을 서야 한다”며 핑계를 댄다. 적잖은 며느리들은 시댁에서 제삿상 차리고 하루 세 끼 밥상과 디저트 준비에 허리가 끊어지는 ‘노동착취’를 당한다고 하소연한다.

나의 어머니는 3년 전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아직도 어머니가 안 계시다는 현실을 인정하기 힘들다. 5년간 암투병 중에 나는 성탄절과 생일을 앞으로도 같이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꼭 할 말이 있었지만 꺼내지 않았다. 함께 하고 싶은 일이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또 있을 거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내 경험에 따르면 오늘 가족과 보낼 시간을 절대 내일로 미루지 말아야 한다.

전쟁과 분단으로 생이별한 이산가족이나 홀로 내려온 탈북자와 실향민을 생각해보자.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가.

모처럼 돌아온 명절이 스트레스를 주고받는 시간이 된다면 슬픈 일이다. 조상께 감사하고 가족끼리 사랑을 확인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한국 친구분들 모두 가족들과 행복한 한가위 보내세요.

마이클 람브라우 / 미국 '아리랑 인스티튜트' 서울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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