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후세인 교훈삼아 核 즉각 포기를"

중앙일보

입력

김대중(金大中.DJ)전 대통령이 6.15 남북 정상회담 3주년을 맞은 15일 저녁 KBS-TV '일요 스페셜'에 출연했다. 지난 12일 녹화돼 일부 내용은 당일 언론에 소개됐었다.

소설가 김주영(金柱榮)씨와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된 방송에서 DJ는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 벅찬 감격을 금할 수 없고, 현실을 보면 걱정되는 점도 있어 착잡한 심정"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남북 정상회담이 한반도 긴장 완화에 기여했고 우리 경제에도 크게 도움이 됐다"며 "햇볕정책 덕분에 지난 3년간 얼마나 편히 살았고 덕을 봤느냐"고 말했다.

대북 송금 특검으로 인해 측근들이 사법 처리되는 데 대해 "책임자로서 가슴이 아프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목소리가 굳어졌다.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 일화도 소개했다. DJ는"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을 때 '북한에 핵이 아무리 있어봤자 미국 핵 앞에선 어린애 장난감이다. 당신네가 살 길은 안보와 경제 회생인데 그것을 해 줄 나라는 세상에 미국밖에 없으니 아니꼽더라도 국익을 위해 미국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충고했다"면서 "이를 金위원장이 받아들여 북.미 대화가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DJ는 "북한이 클린턴 정권 때 참으로 좋은 찬스를 맞이했었다"며 "클린턴 정권하고 합의가 돼 공동성명까지 발표하고 북한의 안전과 경제적 활로를 미국이 열어주고 북한은 핵.미사일 등의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정상회담 후 클린턴 대통령이 나한테 편지를 보내 김정일 위원장을 미국으로 초청했다"며 "미국의 뜻을 북에 전달했지만 金위원장이 거부해 회담이 성사되지 않았다"고 비화를 소개했다.

그는 "金위원장이 그때 갔어야지, 왜 안갑니까"라면서 "그렇게 합의됐으면 빨리 양측이 문서에 서명을 해야 했는데 그것을 질질 끄는 바람에 미국 정권이 공화당으로 넘어가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아쉬워했다.

반면 그는 "(클린턴.부시 정권의 양 정부와) 긴장은 물론 있었지만 그렇게 관계가 나빴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고 한번도 부시 대통령하고 논쟁을 한 일이 없다"며 부시 대통령과의 불화설은 부인했다.

DJ는 북핵 문제의 해법과 관련, "당장 이라크 후세인 정권이 눈 앞에서 사라지는 걸 봤다"며 "북한은 그것을 큰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이번에 큰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DJ는 북한이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로 "한국과 일본이 참가하는 5자회담(남북한.미.중.일)을 즉각 수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북한이 지금 아주 어려운 입장에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북한의 체면이나 혹은 벼랑 끝 전술, 이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으며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라는 논리였다.

金전대통령은 북한의 현실과 관련, "북한이 스스로 내부적으로 붕괴되든 밖에서 붕괴되든 그것은 하나의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북핵은 반드시 철폐돼야 하며 그것(북핵)은 북한에도 도움이 안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양측이 벌였던 신경전도 소개했다. DJ는 "북으로부터 김일성릉 참배를 요구받았지만 '국민 정서를 봐서 못하겠다'고 했더니 북측에서 '그러면 오지 말라'는 답이 왔지만 결국 방북은 성사됐다"고 밝혔다.

또 "金위원장이 서울 답방 약속을 안하기에 '金위원장은 부친을 존경하고 노인을 대접하는 걸로 아는데 노인인 내가 여기에 왔으니 젊은 당신이 안 온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해 확답을 받아냈다"는 말도 했다.

DJ는 또 "김정일 위원장이 공항에 나온다는 말이 있는데 '나오느냐'하면 모르겠다고 하고 뭐 하나 확실한 게 없었다"고도 회상했다.
신용호 기자nova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