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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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백년전의 한시도 그의 손만 거치면 동시대의 텍스트가 된다. 베스트셀러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보림)에서도 드러나듯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옛글의 아름다움을 평이하면서도 단아하게 전해주는 데 일가견이 있다.

한시를 번역하되 현대적 감각으로 글맛을 살리고 쉬운 말, 짧은 문장으로 군더더기없는 해설을 하기때문이다. 옛글에서 곰팡내를 거두고 당의정을 입혀 현대인들에게 한술 떠먹여 준다고나 할까.

그 당의정이 과하면 내용이 충실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곰팡내가 가시지 않았다면 독자들의 외면이 이어질텐데 정교수는 절묘한 황금비율을 아는 듯하다.

새를 주제로 수년간 써온 글을 모은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에서도 정민이라는 저자의 매력이 뿜어나온다. 책에서는 옛글과 옛그림 속에 나오는 새들을 종류별로 모아 상징하는 바를 설명하고 있다.

신의를 뜻하는 제비, 문(文).무(武).용(勇).인(仁).신(信) 다섯가지 덕을 갖췄다는 닭, 설날 아침 대문에 붙이던 세화(歲畵)에 상서로운 의미를 담고 등장하던 학 등을 1백80여장의 새 그림과 1백70여수의 한시를 통해 현재로 되살려 내고 있다.

저자가 새에 관심을 둔 까닭은 새가 선인들의 삶 속에서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상징이었으며, 신화와 전설.민담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사학자 등 인문학자는 새의 문화적 의미만, 조류 학자는 새의 습성과 특징만 공부하다 보니 학제간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글과 그림 속 새를 불러내되 새의 실제 모습과도 비교하고 있다.

새에 관한 지식이 부족한 것을 보완하기 위해 저자는 글 한꼭지를 쓰면 인터넷의 파랑새야생조류동호회에 글을 올려 검증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작업을 통해 앵무새 사육은 당나라때 특히 성행했으며,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소개된 꿩 길들이는 법을 현대 농가도 응용하고 있더라는 이야기를 찾아냈다.

이렇듯 세월이 묻어나는 작업과 정성도 대단하지만, 이 책의 생명력은 새가 '포르르' 뛰쳐 나올듯 생기있게 표현한 문장과 아름다운 도판에서 살아난다.

조선의 제비는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라며 '논어'를 읽을줄 안다고 너스레를 떤 유몽인의 야담집 '어우야담'의 한 대목을 소개하고, 최자의 '보한집'에 나오는 올빼미에게 새끼를 잡아 먹히고 몸통이 희어졌다는 흰 까치의 슬픈 사연을 전하기도 한다.

저자는 "우리 옛글 속에 있는 무진장의 콘텐츠가 단지 한문으로 씌여졌다는 이유만으로 먼지더미 속에 방치되는 것이 안타깝다"며 "이런 정보는 인터넷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정교수가 밤 12시 귀가도 마다않고 보물단지같은 옛글을 찾아 빛내기에 고심하고 있지만, 그의 말처럼 "갈 길은 아직도 멀어서" 아쉬울 뿐이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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