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정책 강·온파 갈려 혼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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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대통령의 남북 관계 언급은 자리에 따라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내 왔다.

"미국의 가공할 군사 능력에 대한 북한의 두려움이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될 가능성이 더 크다." "이젠 어떤 경우에도 북한이 하자는 대로 따라만 갈 수는 없다."

방미 기간 중 발언이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간다." "나는 남북 관계가 틀어질까봐 말 한마디 조심해야 하고 부엌 눈치, 안방 눈치 살피는 가장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

지난 5월 27일 재외공관장 만찬에서의 발언이다. 상반된다. 도대체 어느 것이 진짜인지 모르겠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때론 혼선으로 비춰지는 盧대통령의 이런 대북관 표출은 한.미 동맹에 주안점을 둔 외교.국방부와 총괄 조정자인 청와대 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유화적 대북관'차이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내의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인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의 지난 1일 방한을 즈음해 이런 시각차가 표면화됐다. 울포위츠 부장관이 방한 중 주한미군의 1백10억달러 전력 증강 발표와 함께 한국도 국방비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겠다고 통보해 왔기 때문이다.

이종석(李鍾奭)사무차장을 주축으로 한 NSC 측은 "협상 테이블에 나오기 시작한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며 울포위츠 부장관의 공개 언급에는 신중을 기해 달라는 입장을 미측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외교.국방부 측은 "한.미 동맹의 강화 천명이 오히려 문제 해결 카드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맞섰다. 결국 울포위츠 부장관은 예정된 언급을 모두 다 한 뒤 한국을 떠났다.

방미 당시 盧대통령의 유화적인 대미 발언은 윤영관(尹永寬)외교통상부 장관이 미국행 기내에서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외교부의 시각'을 강력히 설득해 관철된 것으로도 알려졌다.

외교.국방부 관계자들은 "임동원 전 국정원장식 햇볕정책의 영향을 받은 인사들이 그대로 NSC에 대거 포진돼 한.미 동맹보다는 남북 관계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내는 상황이다.

NSC는 형식적으론 라종일(羅鍾一)상임위원장 겸 사무처장의 지휘를 받는다. 그러나 사실상 DJ 햇볕정책의 핵심 브레인 출신인 이종석 사무차장이 실무를 총괄지휘하고 있다.

산하의 이봉조(李鳳朝)정책조정실장은 DJ 청와대의 통일비서관 출신이고 김만복(金萬福)정보관리실장도 DJ정부 국정원에서 자리를 옮겨왔다.

위기관리센터장인 류인희씨 또한 DJ 정권 때부터 청와대의 NSC 위기관리실에서 근무해 왔다. 현재 NSC에는 모 대학 삼민투 위원장 출신도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NSC 측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NSC는 각 부처의 정책을 조율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일 뿐"이라며 "오히려 외교부를 개혁하라고 보낸 윤영관 장관이 보수 일변도인 외교관들의 등에 업혀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최훈 기자

*** 바로잡습니다

▶13일자 5면 ‘대북정책 강·온파 갈려 혼선’기사 중 류인희 위기관리센터장을 류희인 위기관리센터장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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