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절 행사 앞둔 중국, 북한에 자제 촉구했을 가능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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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호 3 면

“중국은 현 상황과 관련해 건설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21일 오후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황준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중국 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의 통화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한다. 북한 측이 고위 당국자 접촉을 전격 제의한 것에 중국이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번 고위급회담에는 중국이 북한에 분명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며 “북·중 관계가 소원해졌다고 하지만 경제적인 부분에서 중국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중국의 역할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북한 측에 모종의 압박을 가한 정황은 북한 외무성이 발표한 성명에서도 드러난다. 북한 외무성은 21일 밤늦게 “지금 와서 그 누구의 그 어떤 자제 타령도 더는 정세 관리에 도움을 줄 수 없게 됐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황 본부장과 우다웨이 특별대표가 1시간 이상 이번 한반도 사태에 대한 의견을 나눈 후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 외무성 성명이 나온 시기 등을 보면 중국을 겨냥해 발표한 성명”이라며 “김정은 등 북한 최고위층이 중국의 압박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미지수지만 북한이 느끼는 압박감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특히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취임 후 최대 역점 사업 중 하나인 항일 승전 70주년 기념행사(9월 3일)를 앞두고 북한의 도발이 미칠 부정적 영향에 큰 우려를 갖고 있다고 한다. 외교가 소식통은 “지난번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때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취소했는데 남북 긴장이 지금 수준에서 계속되면 방중 일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전승절 행사 흥행을 위해 박 대통령의 참석이 중요한 만큼 중국 입장에서는 이 부분을 신경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 본부장과 우다웨이 대표는 오후 6시부터 1시간 가까이 전화 협의를 했다. 중국 외교부의 공식 입장은 그로부터 1시간 후인 오후 8시쯤 발표됐다. 중국 외교부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유관국가들이 냉정과 자제를 유지하고 접촉과 대화를 통해 현재 사태를 적절히 처리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남북한 모두의 자제와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외교가 소식통은 “중국의 공식 입장 이면을 봐야 한다. 이전처럼 한국의 한·미 연합군사훈련도 잘못이고, 북한의 도발도 잘못이란 식의 양비론적 입장 그대로라면 중국이 공식 입장을 내는 데 이렇게 오래 걸렸겠느냐”며 “또 우리 측의 요청에 의해 이뤄진 우다웨이 대표와의 전화 통화가 한 시간이나 계속됐다는 점에서도 중국이 우리와 같은 우려를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남북 긴장이 고조됐을 때 중국은 중재 역할을 해왔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때는 다이빙궈(戴秉國) 당시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남북을 오가며 메신저 역할을 했다. 다이빙궈는 당시 평양에 “북한의 선제공격으로 남북 간 무력충돌이 일어나면 중국은 북한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다만 최근 경색된 북·중 관계로 인해 중국의 ‘말발’이 얼마나 먹혔는지는 미지수다. 중국과 북한의 고위급 접촉은 핵실험(2013년 2월)과 장성택 처형(2013년 12월) 이후 중단된 상태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면 한·미 동맹 강화론,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한반도 배치 필요성이 제기되는 등 중국이 손해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 쪽에 외교적 해결을 요구했을 것”이라며 “다만 최근 북한이 중국의 말을 무조건 듣기보다 국익에 맞춰 응하는 경향이 있었던 만큼 북한도 외교적 해결을 염두에 두고 행동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지혜·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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