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법이 정치권력에 휘둘려 … 인정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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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새정치민주연합 한명숙(71·전 국무총리) 의원은 20일 “저는 오늘 정치탄압의 사슬에 묶인 죄인이 됐다. 법원의 판결을 따르지만 유감스럽게도 인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 후 국회에서 한 기자회견에서다. 한 의원은 “공정해야 할 법이 정치권력에 휘둘렸다. 법리에 따른 판결이 아닌 정치권력이 개입된 불공정한 판결”이라며 “양심의 법정에서 저는 무죄”라고 강조했다.

 이어 “제게 돈을 줬다는 증인이 재판장에서 돈을 준 사실이 없다는 양심고백을 했는데 검찰은 백주대낮 도로 한복판에서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얼토당토않은 혐의를 덮어씌웠다. 돈을 준 사람은 없고, 돈을 받은 사람만 있는 날조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뒤 “역사는 2015년 8월 20일을 결백한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한 날로 기록할 것”이라며 “비록 제 인신을 구속한다 해도 저의 양심과 진실마저 투옥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시작된 정치 보복이 한명숙에서 끝나길 빈다”고도 했다.

 이날 문재인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를 비롯해 이해찬·최민희·홍영표 의원 등 당 소속 의원 20여 명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판결을 지켜봤다. 문 대표는 판결 직후 기자들에게 “대법원 판결에 아주 실망이 크다. 정말 참담한 심정”이라며 “일련의 사건 판결들을 보면 검찰의 정치화에 이어 법원까지 정치화됐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 의원의 기자회견에 배석해 “한 전 총리를 감옥으로 보내야 하는 우리의 무력함이 참담하다”며 울먹였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당 신공안탄압저지대책위원회를 소집해 “검찰의 정치검찰적 행위를 아주 걱정하고 있다”며 “사법부가 관료화되고 야당 탄압의 근거가 된다면 이 땅에 약하고 힘든 사람들은 살 수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사필귀정”이라며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논평했다. 김무성 대표는 20일 기자들과 만나 “이것을 야당 탄압이라고 하면 참…. 국민들이 판단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첫 여성 국무총리였던 한 의원은 역대 총리 가운데 처음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1979년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으로 수감된 적이 있는 한 의원으로선 두 번째 수감 생활이다. 한 의원은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9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2010년 4월 불구속 기소된 뒤 5년간 재판과 정치를 병행했다. 2010년엔 검찰 수사를 받으며 6·2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했다. 2012년 1월에는 민주통합당 대표로 선출돼 19대 총선을 이끌었으나 역시 패배로 끝났다. 비례대표인 한 의원의 자리는 신문식 전 민주당 조직부총장이 승계한다.

이지상 기자 groun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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