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이야기] 주말 밥상 식욕이 돕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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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당신의 입맛은 어떤가.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 등 건강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지표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러나 가장 손쉬운 방법은 식욕이 왕성한지 살펴보는 것이다. 식욕이야말로 건강을 가늠하는 정확한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우울증에서 암까지 대부분의 질환에 공통적으로 깔려있는 증상이 바로 식욕부진이다.

이른바 입맛이 떨어지는 것이다. 실제 사회적 저명인사의 일생을 다룬 MBC 프로그램 '성공시대'의 제작진도 출연자들의 공통점이 왕성한 식욕에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딸의 남자친구가 사윗감으로 적당한지 따져보려면 식사에 초대해 식성을 유심히 살펴보라. 식욕이 왕성하면 건강하고 성공할 확률도 높다.

식욕은 본능이다. 시상하부란 뇌 깊숙한 곳에 식욕을 관장하는 중추가 있다. 그러나 식욕은 이성을 상징하는 대뇌피질에 의해 강력하게 통제받는다. 근심거리가 많고 긴장 속에 살면 당연히 식욕이 떨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긴장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콩팥 옆에 위치한 부신(副腎)을 자극해 아드레날린이란 악명(?)높은 호르몬을 분비한다.

아드레날린은 원래 나쁜 호르몬이 아니다. 맹수가 쫓아온다든지 하는 비상사태에선 아드레날린이 충분히 분비돼야 혈압과 맥박이 올라가고 근육으로 흐르는 혈액의 양이 증가해 짧은 시간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말하자면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호르몬이다.

중요한 것은 생과 사가 걸린 상황인만큼 입맛이나 소화 등 평상시 작동되는 '한가한' 인체기능은 모두 정지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면 식욕이 떨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때 건강에 필수적인 면역력도 한가한 생리작용으로 억울하게 분류돼 함께 억제된다는 것이다.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면 암에 잘 걸리는 것도 같은 이치다.

아드레날린은 혈관에도 부담을 준다. 동맥경화와 고혈압을 유발해 뇌졸중과 심장병을 일으킨다. 성공적인 인생을 구가하던 직장인이 느닷없이 돌연사로 희생되는 경우도 아드레날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시대에서 숨가쁜 삶을 강요당하는 현대인은 대부분 필요 이상으로 아드레날린 과잉 분비 상태에 놓여있다. 쉽게 말해 부신이 만성적으로 잔뜩 부어있다는 것이다.이 경우 당장 능률은 오를지 몰라도 건강은 나빠지므로 길게 보면 큰 손해다. 하긴 '돈 구덩이 혹은 일 구덩이가 무덤 구덩이'란 속담도 있지 않은가.

처세술 책에 보면 '성공을 위해선 시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에 몰두하라'는 말이 있다. 중요하지만 당장 시급하진 않아보이는, 그래서 관심 밖인 대표적 대상이 바로 건강이다.

그러나 건강도 배려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당신이 해야 할 배려는 이완의 미학을 배우는 것이다. 운동이 됐든 취미가 됐든 모든 시름을 잊고 편안해질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개발해야 한다. 건강을 위해선 당장의 퍼포먼스(performance.성취)보다 미래를 위한 포텐셜(potential.잠재력)에 주력해야 한다. 그리고 포텐셜의 요체는 바로 성난 부신을 달래주는 이완에 있다.

이쯤에서 당신의 주말은 어떠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주중 쌓인 긴장을 마음껏 풀 수 있는 레퍼토리를 준비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가. 아니면 아무 계획 없이 늦잠을 자거나 TV 앞에 매달려있다 시간을 보내기 일쑤인가. 긴장에서 해방된 편안한 주말이야말로 식욕을 돋우는 최상의 향신료이며, 스트레스에 찌든 당신의 건강을 지키는 최선의 지름길이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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