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사관 앞 분신 시도 최현열씨 유서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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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일제를 타도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과제입니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일본 대사관 앞에서 분신을 시도한 최현열(80)씨의 유서가 공개됐다.

시민사회 공동대책 준비모임은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씨의 유서를 14일 공개했다. 최씨의 유서는 자필로 작성됐으며 '칠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A4 용지 다섯 장 분량이었다.

최씨는 유서에서 "바른 역사를 찾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며 "위안부 할머니들이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 모여 눈물로 하소연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적었다. 또 최씨는 "광복 70주년을 계기로 전 국민이 힘을 합쳐 애국심을 발휘해야 한다"는 말도 남겼다.

최씨는 유서에서 한국 정부에 대한 아쉬움도 적었다. 최씨는 "광복 후 나라를 되찾았어도 친일파 민족반역자들과 일제에 동조했던 부유층 등이 각 분야 실권을 쥐고 나라를 다스리면서 활보하고 다닌다"며 "독립유공자 자손들은 거리를 헤매고 있으며 강대국의 도움을 받는 원통한 민족이 됐다"고 했다.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 이국언(47)씨에 따르면 최씨는 이 유서를 한 달 전에 작성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그 때 선산에 가서 성묘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분신을 결심했지만 가족들에게는 티를 내지 않아 아무도 몰랐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함께한 한국진보연대 대표 박석운(60)씨는 "팔순의 노인께서 몸을 던져야 하는 이런 현실에 대해 참담한 심정"이라며 "우리 후손들이 나서서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시민사회 준비모임은 근로정신대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민족문제연구소·한국진보연대 등 10개 단체가 참여했다. 준비모임 측은 "다음 주에 정식으로 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최씨의 뜻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앞으로 일본 아베총리의 역사왜곡 중단·친일 세력 규탄·일본 재무장화 반대·일본 과거사 청산 등을 주장할 계획이다.

한편 한강성심병원에 입원 치료중인 최씨의 상태는 위독하다고 한다. 광주기독교연합회 장헌권 목사는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며 "열은 좀 내렸지만 합병증의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최씨의 가족 측은 의료진과 의논 후 수술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박병현 기자 park.b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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