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무성 대표, 중국 가면 무슨 말 할 텐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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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호 02면

방미 중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얼마 전 워싱턴에서 “우리에게는 역시 중국보다는 미국”이라며 “미국은 유일한, 대체 불가능한, 독보적인 동맹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우드로윌슨센터 연설에선 “한·미 관계는 전면적인 관계이고, 한·중 관계는 분야별 일부의 관계”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가로 이미 미국 못지않게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가 된 중국 입장에서 본다면 섭섭함과 불편함을 넘어, 일종의 ‘도발’로도 느낄 수 있는 발언이다.

 김 대표는 박근혜 정부와 정책을 조율하는 집권당의 얼굴이다. 스스로는 “대권 주자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지만 현재로선 여권의 차기 유력 주자임에 틀림없다. 그런 면에서 중국 정부는 김 대표의 발언을 중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은 양국으로부터의 러브콜과 함께 견제를 함께 받아야 하는, 묘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으로선 그 어느 때보다 두 대국 사이에서 전략적 판단이 중요하게 됐다. 한때 안보와 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에 대한 영향력 1위였던 미국이 급부상하는 중국의 도전을 받게 되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중 수교 23년 만에 중국과의 교역액은 3000억 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급격히 불어났다. 지난해 미국과의 교역액 1156억 달러의 두 배를 훨씬 넘는다. 그만큼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다는 것이다. 중국의 존재는 우리에게 이제 ‘일상화’됐다고 봐야 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등 안보상의 미묘한 문제에 대해서도 중국이 발언권을 주장해 올 일이 더 많아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외교사안에 대한 발언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버르장머리’라고 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반미(反美)면 좀 어떠냐”고 했다. 모두 상대방을 자극했고, 그 뒷수습에 외교역량을 소모해야 했다.

 정치인들은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너무나 많이 한다. 말이 많으면 탈이 나는 법이다. 해서 별 이익이 없거나 오히려 손해가 된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중국보다 미국”이라는 게 김 대표의 확고한 신념이라 하더라도, 공인으로서 공공연하게 입에 올리는 건 금도를 넘은 일이다. 보수층을 의식해 미국과의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할 뜻이었다면, 굳이 그런 ‘최악의 표현’을 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외교적 화법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김 대표는 2013년 1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특사 자격으로, 또 지난해 10월엔 여당 대표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난 적이 있다. 유력 정치인인 김 대표는 앞으로도 시 주석이나 다른 중국 지도자들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때 중국에서 “미국에서 왜 그런 말을 했나” “새누리당의 스탠스가 ‘중국보다 미국’이냐”고 물으면 뭐라 답할 것인가. 거기선 “미국보다 중국”이라고 할 텐가.

 정치인들이 김 대표처럼 외교 사안에 대해 조악한 발언을 툭툭 던진다면 외교적으로 매우 큰 골칫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한층 더 복잡해진 국제관계에서 정치인들의 언행은 보다 더 치밀한 전략적 계산에서 나와야 하며, 표현 역시 신중해져야 한다. 무엇보다 외교를 국내정치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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