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게미쓰를 명예회장 추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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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제삿날 귀국한 신선호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의 셋째 남동생인 신선호 산사스 사장이 31일 부친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도우려 신 총괄회장의 일본행을 추진한 인물로 알려졌다. [김상선 기자]

한·일 롯데그룹의 지주회사인 일본 롯데홀딩스가 신격호(94) 총괄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하기 위한 주주총회를 강행키로 한 것으로 31일 확인됐다. 지난달 27일 형 신동주(61)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주도한 ‘쿠데타’를 진압한 동생 신동빈(60) 롯데그룹 회장이 최근 일부 친족까지 가세한 경영권 분쟁과 상관없이 한·일 롯데 통합경영 방침을 그대로 밀어붙이겠다는 뜻으로 해석돼 주목된다.

 한편 이날 입국한 신 총괄회장의 셋째 남동생인 신선호(82) 일본 산사스 사장은 “신 총괄회장이 (차남에게) ‘회사를 탈취당했다’고 말했다”며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한·일 롯데를 경영한다는 결정을 한 번도 바꾼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신 사장은 ‘신동주 쿠데타’의 실질적인 브레인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31일 본지를 통해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신격호 총괄회장의 일본 이름)를 명예회장으로 추대하기 위해서는 정관을 변경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주총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 이사회에서 명예회장 추대 결정을 내린 이후 주총 개최까지 기한을 둔 규정은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신 전 부회장은 지난달 30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이사 교체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주총에서 명예회장 추대를 위한 정관 개정 외에 별도의 안건을 상정할 가능성이 있나”라는 본지의 질문에 대해 롯데홀딩스 측은 “주총 내용과 관계된 것은 답변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주총은 사실상 신동빈 회장의 주도로 개최되는 만큼 이사 교체와 같은 별도의 안건 상정은 고려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롯데그룹 고위 관계자는 “총괄회장의 명예회장 추대라는 ‘초강수’를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신동빈 회장이 주총에서 패배하는 일은 없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반(反)신동빈 동맹’으로 불리는 롯데 총수 일가가 서울에 속속 모여들고 있지만 신동빈 회장은 여전히 일본에 머물고 있다. 신 회장은 3일께 귀국할 예정이다.

 신동빈 회장은 현재 자신의 축출을 겨냥해 몇몇 친·인척이 결집하는 것을 ‘세키가하라(關ケ原) 전투(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국통일을 완성한 전투)’와 비슷한 상황으로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의 핵심 관계자는 “이 말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이란 뜻 못지않게, 롯데 역사에서 진정한 신동빈의 시대를 열기 위해선 이런 갈등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은 신 총괄회장과의 일본어 대화 내용을 담은 녹음파일을 KBS 뉴스9에 제공했다. “신동빈이 아버지를 대표이사에서 내려오게 했습니다”는 신 전 부회장의 말에 총괄회장은 “신동빈이? 그래도 가만히 있을 거냐”라며 불만을 내비쳤다. 그는 또 “신동빈도 그만두게 했잖아”라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측은 “차단된 가운데 만들어진 녹취라 의도가 의심스럽고, 이사회라는 절차를 거치지 않은 만큼 상법상 원칙에서 벗어난 의사결정까지 인정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글=심재우·구희령 기자 jwshim@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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