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석의 걷다보면] 기다려다오 히말라야여!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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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C(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 1회

올해 들어 가장 춥다는 1월이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 밖에 나왔는데 뼛속까지 시린 추위다.

공항으로 가는 전철을 탔는데 며칠 전 식사 자리에서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난 둘째(어머니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다)가 다른 데는 다 가도 높은 산(히말라야를 뜻한다)은 안 갔으면 해.”

TV에서 본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시고 하신 말씀일 것이다. 사실 히말라야를 가겠다고 결정한 건 며칠 되지 않았다.

“아니 뭐 산 등반하러 가는 게 아니고 트레킹이야, 그냥 걷고 오는 거야”라고 말은 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을 간다고 하니 어머니의 걱정은 당연한 거다.

군대 시절에도 그랬다. 당시 ‘우정의 무대’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마침 내가 이등병일 때 방영되었다. 강원도 양구에 있는 최전방 부대였다. 내가 봐도 참 군대 생활을 살벌하게 그렸다. 예를 들어 정찰대와 수색대가 나와서 무술 시범을 보이고 벽돌을 격파했다. 정말 힘든 군 생활이 선하게 그려질 정도의 장면들이었다. 첫 휴가를 나왔을 때 어머니의 폭포 같은 눈물이 아직도 생생하다. 덕분에 용돈을 조금 더 받았던 기억도.

걱정하는 가족을 뒤로하고 배낭을 챙겨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아직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이번 트레킹에는 20여 명 정도 참여한다. 대규모 인원이다. 중학생부터 예순 살 어른까지 나이와 성별 모두 다양하다.

시간이 되었다. 발권을 마치고 비행기를 타기 10분 전이다. 공항 흡연실에서 연거푸 담배만 피우고 앉았다. 이 모습이 3년 전 스페인의 카미노를 갈 때와 비슷하다. 물론 그때와는 많은 게 달라졌지만. 이제 여권과 비행기표를 들고 있는 손은 떨리지 않았다. 다만 마음이 떨리고 있을 뿐이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는 대한항공 직항이 있다. 우리 일행은 비행기 예약이 늦어 중국 광저우에서 경유를 하고 가야하는 비행기를 타야했다. 직항이라면 6시간 만에 도착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비행기 여정은 꼬박 하루 가까이 걸린다. 휴~ 매우 긴 시간이다. 카미노 이후 많은 비행기를 타고 세상을 돌아다녔지만, 아직도 비행기는 가장 두렵다. 비행기를 타고 하루를 버티는 것이 히말라야를 걷는 것보다 힘들게 느껴진다. 천천히 비행기 바퀴가 움직인다. 커다란 곰 한 마리가 슬금슬금 걸어가듯이 움직인다.

하루만 기다려다오. 히말라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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