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더치 디지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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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더치 디지즈'(Dutch disease.네덜란드 병)란 1960년대 막대한 천연가스가 발견돼 경제의 호황을 꿈꿨던 네덜란드가 오히려 경제적 고통을 겪었던 역사적 경험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후 이 말은 자원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특정 부문의 경제적 활력이 경제 전체의 호황을 불러올 것이라는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로 사용돼 왔다.

그렇다면 산업의 발전에 따라 각광을 받게 된 특정 자원의 보고(寶庫)는 과연 그 나라와 국민에게 축복인가, 아니면 고통거리인가? 학자들의 많은 연구는 재앙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재앙론을 대표하는 것으론 조지 소로스의 '열린사회재단'이 최근에 발간한 보고서를 들 수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60년대에서 90년대의 30년 동안 자원빈국이 오히려 자원부국보다 2~3배 정도 빠른 경제성장률을 보였다.

실제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기름값을 올리기 시작한 70년대 이후 많은 사람은 30년이면 중동 산유국가들이 선진국은 아니더라도 잘사는 나라에 근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부패와 인권무시, 정치.경제의 후진적 시스템이 여전한 중동의 현실은 이러한 예측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한국.싱가포르와 같은 자원빈국들이 선진국의 문턱까지 이르고 있다.

반대로 자원을 제대로 활용한 대표적인 예가 노르웨이와 칠레다. 노르웨이는 막대한 석유수입으로 '안정화 기금'을 만들고 국가 인프라와 교육 투자 등에 쏟아부었다.

다른 나라들이 80년대 이후 국가의 복지예산을 줄일 때도 오히려 이를 확대했다. 칠레도 마찬가지다. 칠레는 동(銅)으로부터 얻어지는 막대한 수입을 역시 안정화 기금형태로 관리하면서 경제개혁을 이끌었다.

OPEC 창설자 중 한명인 후안 파블로 페레즈 알폰소는 많은 사람이 석유수입을 이유로 중동의 장밋빛 전망을 말하던 75년에 "석유는 악마의 똥"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자원의 빈부가 아니라 운용과 시스템, 결국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 것이다.

이런 더치 디지즈는 세계관과 국제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꼭 유리한 지정학적 조건만이 안보를 튼튼히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특정한 국가, 특정한 지역,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편식과 상황에 대한 과도한 만족은 또 다른 '더치 디지즈'가 될 수 있다.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