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국정원 처음 찾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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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방일 뒤 국가정보원을 찾아간다. 정확한 일정이 잡히진 않았으나 이르면 9일 귀국하는 즉시 방문할 수도 있다고 한다.

청와대 측은 국정원 방문에 관심이 쏠리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다. 그래서 "단순한 격려방문"이라고 강조한다. "국정원 조직개편과 인사가 마무리된 상황에서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일"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다른 시각도 있다. "국정원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이 취임 1백일을 계기로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관점이다. 국회 정보위 소속 민주당 의원은 6일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정의 난맥상을 추스르기 위해 '강한 정부'의 면모를 보이기로 한 만큼 국정원에 힘을 실어주려는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盧대통령은 그동안 국정원을 경원하다시피 했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정치권력 기관이었던 국정원의 힘을 빼겠다는 뜻에서였다. 지난 3월 9일 '평검사와의 대화'에서 盧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취임한 뒤 국정원 보고를 한 건도 안받았다. 처음 온 것을 돌려보내며 이런 것 하지 말라고 했다."

盧대통령은 고영구(高泳耉) 국정원장에게 임명장을 준 뒤 보고를 딱 한번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를 찾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대통령과 국정원장 사이에 신뢰가 없다"거나, "대통령이 여전히 국정원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 아니냐"는 등의 얘기가 나왔다.

盧대통령과 高원장은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는 게 盧대통령 측근들의 설명이다. 두 사람은 90년대 초 꼬마 민주당을 같이했지만 친교를 맺지는 않았다. 하루는 두사람이 회의석상에서 격렬한 언쟁을 벌였다.

盧대통령이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갈 정도였다. 이후 盧대통령은 高원장을 멀리하는 듯했다고 한다. 高원장이 국정원장 후보로 천거됐을 때도 盧대통령은 "다른 사람은 없느냐"고 했다고 한다.

어찌됐든 국정원에선 대통령의 방문에 기대를 거는 눈치다. 사기를 북돋우는 발언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화물연대 파업을 앞두고 '물류대란'을 우려하는 경고음을 청와대 등에 네차례나 보냈다고 한다.

그럼에도 묵살당하자 대통령에 대한 국정원장의 독대(獨對)보고가 폐지된 것을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盧대통령이 독대보고를 부활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국정원을 더이상 방치하지 않고 거기서 수집된 고급 정보를 국정 운영에 활용할 가능성은 크다는 게 여권 핵심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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