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형편 때문에 … 범죄자로 전락한 컴퓨터 천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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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영재가 가정형편 때문에 범죄자로 추락했다. 돈을 받고 대학생들에게 졸업 작품 프로그램을 만들어 판 혐의(학사업무 방해)로 30일 전북경찰청에 불구속 입건된 A(23)씨 얘기다.

A씨는 몇년전까지만 해도 촉망받는 컴퓨터 영재였다. 초등생때부터 독학으로 컴퓨터로 익혔으며, 중학생이 되자 프로그램을 짰다. 인문계에 진학하면 컴퓨터와 멀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공고를 선택했고, 서울시가 주최한 정보올림피아드 대상을 비롯해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공모대전·한국정보올림피아드 등 주요 대회에서 수십 차례 상을 받았다. 3학년 때인 2011년에는 당시 지식경제부가 '미래의 스티브잡스를 육성하겠다'며 시행한 ‘소프트웨어(SW) 마에스트로 100인’에 선정됐다. 전국의 초중고와 대학생 가운데 컴퓨터SW 분야 최고 인재로 뽑힌 것이다. 또 카이스트와 안철수연구소의 교육생으로 선발돼 트레이닝도 받았다.

하지만 3학년이 되면서 갑자기 어려움이 닥쳤다. 아버지 사업이 부도를 내 집을 사글세로 옮겨야 했다. 아버지는 몸져 눕고 어머니도 아팠다.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해야 될 입장에 내몰린 A씨는 대학진학을 포기했다. 대신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그러던 중 컴퓨터 전공 대학생들이 돈을 내고 졸업 작품을 구매한다는 사실을 알겠다. 자신의 특기를 살려 프로그램을 만들어 팔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씨는 2012년 9월 자신의 홈페이지에 ‘졸작(졸업작품)을 판매한다’는 문구를 내걸고 사업을 시작했다. 첫 작품으로 ‘화재 예방 시스템’을 개발해 한 여대생에게 건네주고 40만원을 받았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곧바로 경보가 울리면서 문자로 신고되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올 5월까지 총 200여 개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팔았다. 이들 중에는 타인이 차량 문을 딸 경우 자동으로 사진이 찍히고 문자로 통보해 주는 ‘자동차 도난방지 시스템’, 주파수로 특정음을 인식해 악보를 그려 주는 ‘자동 작곡 프로그램’, 아이 울음소리를 분석해 배고픔을 알려주는 ‘애기 울음소리 프로그램’ 등 아이디어 제품이 많다. 돈은 프로그램당 30만~40만원을 받았다. 지금까지 번 돈 5200여 만원은 아버지 치료비와 생활비 등으로 썼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비양심적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불법인 줄은 몰랐다”며 “앞으로 정직하게 땀을 흘리고 더 열심히 노력해 벤처사업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전북경찰청의 선원 사이버수사대장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이가 한 순간의 실수로 인생을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재기의 기회를 주고,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불구속 처리했다”고 밝혔다.

전주=장대석 기자 ds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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