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대 수간호사 일기 ③] 내 부모 보내듯 펑펑 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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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모 보내듯 펑펑 울다

6월 16일

어제 연락드린 B씨 보호자분이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긴 심호흡소리에 이어 조용한 목소리로 ‘아내에게 대신 마지막 편지를 읽어 달라’는 말에 막내 간호사가 놀란 눈치로 나에게 알렸다.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해 눈물로 하소연 하던 많은 보호자분들과는 다르게 침착하게 말을 이으셨다.
할 말이 많은데, 너무 미안하고 보고 싶은 그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받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아내에게 마지막 말을 전하고 싶다고 하셨다. ‘남편이 ??엄마에게 전합니다’로 시작된 편지의 내용은 처음 이를 받아 적던 막내 선생님부터 울렸다. 그리고 남편분의 편지를 끝으로 두 자녀분의 편지도 이어졌다. 마지막까지 함께 있어 줄 것과 편지를 부탁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가족 이야기’ 로 느껴졌다.

병원 내에서 가장 조용하면서도 시끄러운 이곳. 중환자실은 중증의 환자분들이 함께하는 곳이기 때문에 정을 나눌 시간도 없이 급히 나가시는 분들도 많다. 인사도 없이 아파하며 떠나시는 분들을 보며 함께 울었고, 한마디도 나눠보지 못한 분들도 계시지만 꾸준히 상태가 호전되어 일반 병실로 옮기시면 그것만큼 기쁜 일이 없었다. 을지대학교병원에 97년에 입사하여 14년째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며, 처음으로 내 부모님의 마지막을 보내듯이 펑펑 울었다. 편지의 내용이 중환자실 안을 가득 채우던 순간 우리는 눈물로 서로의 마음을 알았다.

동료 몸이 내 몸 같아

6월 17일

다음날 아침, 우리는 더 이상의 아픔이 없길 바라며 또 바삐 뛰었다. 무거운 방호복과 마스크로 숨이 가쁘고 머리가 아프면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게 쉬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쉬는 시간이면 창밖의 움직이는 것들을 확인하며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다시금 현재로 돌아왔다. 서로의 지친 안색을 보며 웃어주고 격려했다. 내 앞의 동료 몸이 내 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과를 마치고 우리가 생활하는 병동에서 기분전환 겸 눈썹을 그린 ??쌤을 보며 마스크 쓴게 더 예쁘다는 농담을 던지고 기분 좋게 각자의 병실로 돌아갔다. 밖은 아직도 난리통인 모양이지만 정작 우리는 그 안에서 침착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오늘 하루도 살아 있음과 함께하는 우리 중환자실 식구들에게 ‘감사’하며 마무리 한다.

기다려주지않을 시간이라면 더 빠르게 흐르길

6월 19일

박?? 간호사의 생일이었다. 어떻게 아셨는지 생일카드와 스페셜 도시락을 보내주셨다. 힘들어 지쳐있어 생일인줄도 모르고 있던 ??쌤은 왈칵 울었다. 밖에서 먹는 비싼 스테이크는 아니었지만 챙겨주는 사람, 축하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쌤의 모습에 모두 웃을 수 있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해서 얼마나 속상할까 싶다. 더 축하해주고 이야기 나누고 싶었지만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다시 일을 해야 했다. 이왕 기다려 주지 않을 시간이라면 더 빠르게 흘렀으면 좋겠다. 다독여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오늘도 힘찬 하루가 되었다. 우리가 건넨 축하인사를 우리가 받게 될 그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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