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대 수간호사 일기 ①] 살아있음에 감사한 나날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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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음에 감사한 나날들

6월 9일

시간이 얼마나 흐른건지 모르겠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밤, 메르스 확진환자가 나왔다. 그럴 줄 몰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긴장의 끈을 꽉 쥐고 있었지만 설마 싶었다.

가뜩이나 마른 몸에 힘든 나날을 보내던 우리 환자분들에게 너무 죄송하다. ‘하필이면...’ 싶다. 며칠째 의식없이 긴 호스줄에 의지해온 A할머니는 격리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숨소리가 더 거칠어졌다. 최근 더 약해진 할머니의 생명줄이 단단해지길 바라며 거죽뿐인 팔목에 주사바늘을 꽂았다. 눈짓으로 손짓으로 우릴 토닥여 주시던 할머니가 이젠 아픈 주사바늘에도 반응하지 않아 너무 속상하다.. 소란스러워 나가본 중환자실 앞은 항의하기 위해 찾아온 문병객들과 언론인들이 언제부터인지 와있었고 공식적으로 설명할 시간도 없이 우리는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도록 격리됐다. 굳게 닫혀져 있는 문이 우리와 외부를 갈라놓았다. 언론에 보도되고 나서 중환자실에 밀려오는 백통도 넘는 보호자분들의 전화에 ‘너무 죄송하다’, ‘절차에 따라 진행할 예정’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어 답답하기만했다.. 그 와중에 간호사가 아닌 교수들만 찾아대는 사람들 때문에 몇 되지 않는 교수님들도 붙들려있었다.

노출된 인원을 일단 모두 격리하고 나니 중환자실에 남은 인원이 몇 없었다. 부족한 인원 탓에 메르스와 아무런 관련 없이 병가로 쉬고 있던 주임간호사 ??쌤을 포함해 여러 선생님들이 책임감에 긴급지원 나와 주었다. 메르스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이 이렇게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 가족들에게는 뭐라고 하고 나왔을지, ??쌤은 우리가 미안해 할까봐 태연한척 웃어 넘겼다. 정말 천사들이 도왔다... 급하게 근무자수를 맞추어 낮번 간호사들을 시작으로 응급실에서 급히 에볼라 때 준비해둔 노란 방호복을 가져와 입었고, 우리는 30분 만에 탈진했다. 샐 틈 없는 방호복 덕분에 온몸은 바로 축축하게 속옷까지 젖었고 N95마스크는 날숨을 그대로 마시게 해 산소부족이었다. 두통, 소화불량과 변비는 기본, 설사와 구토까지 동반했다. 오히려 우리가 죽을 것만 같았다. 하루 종일 땀에 젖어 붙어있던 속옷은 몸을 감싼 모양 그대로 발갛게 부어올라 쓰라려온다. 하루가 넘도록 입고 있던 노란옷을 벗고 하얀 방호복으로 갈아입으니 그나마 살 것 같았다. 바깥공기가 살에 닿으니 두 아이가 생각났다. 그리고 펑펑 울었다. TV에서 보던 일이 나에게 닥칠 줄 몰랐는데... 그 TV를 본건지 부재중 전화가 몇 십 통 와있었다. 동료 간호사들이 하나 둘씩 모여 함께 붙잡고 울었다. 집에 있을 가족들 걱정에 멈출 수 없던 눈물은 비상상황을 알리는 벨소리에 잠시 멈췄다.

-0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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