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진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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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향」이란 말은 중국사람들에게도 향수를 일깨우는 말이다. 벌써 3천여년전 주나라때부터 그것은 행정구획의 한 명칭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주제에 따르면 5가를 묶어「비」,5비를「여」,5여를「족」,5족을「당」,5당을「주」,5주를 「향」이라고 했다.
향의 가구수는 1만2천5백가. 중국천하는 6천6백22향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진」이라는 말도 주대의 행정구획을 나타내는 9기의 한 명칭이였다. 왕이 있는 곳으로부터 사방 천리를「국기」, 여기서다시 5백리를「후기」,그 바깥 5백리를「전기」,그 바깥 5백리를「남기」,그 바깥 5백리를「채기」,그 바깥 만백리를「위기」,그 바깥 5백리를「만기」, 그 바깔 5백리를「이기」,그 바깥 5백리를「진기」라고 했다. 그러나「진」의 바깥 5백리엔 「번기」가 또 있다.
국기와 진기의 거리는 5천리. 중국대륙으로 치면 결코 먼 거리는 아니지만, 우리 감각으로는 두메산골, 벽촌같은 인상이다.
중공은 최근 행정구획을 그 고색창연한 육산의「향진」제로 바꿔 가고 있다. 1958년 이래중공의 지방정치 조직이었던 인민공사를 대신하는 조직이다. 1982년 11기3중총회가 채택한 신헌법이 바로향진제를 행정단위로 삼고 있다.
인민공사는 모택동이「대약진운동」의 구호와 함께 채택했던 조직으로 세가지 특색을 갖고있었다.
①정권기구와 집단소유제의 경제조직을 합친「정사합일」②3백호를묶는 집단공유제 ③농촌의 사회조직으로 공산주의를 지탱하는「최양의 조직」.
이를테면「인민공사」아래선 밥도 밥공장에서 공동으로 먹어야 하고 때로는 합숙을 해야했다. 25호내지30호로 묶어진 생산대, 3백호내지5백호로 묶어진 생산대대 중심의 생산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여년에 걸친 인민공사의강행은 농공업생산의 효율화나 향상은 커녕「빈곤의 평등화」를 촉진했을 뿐이다.
78년 11기3중전대회는 비로소 인민공사의 해체를 논의했다. 사람들은 슬금슬금 집에서 저마다 음식을 만들어 먹는 시대로 되돌아 가기 시작한 것이다.
중공의행정구는 위로 부터 성·현·향,3급제로 나뉘어 성레벨에 자치구.직할시,현레벨에 자치주·자치현·시,향레벨에 민족향·진이 포함된다.
오늘 중공이 향진제로 회귀하는것은 마르크스「사상」의 톱니(치차)보다는 인간가족의 결합이 삶의 향상에 더 도움이 된다는 실용적 판단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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