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경제 "허약체질" 이대로 좋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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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방경제의 허약한 체질과 기반은 어제오늘의일이 아니다. 갈수록 악화되고 있으니 걱정이다.
해운과 합판으로 골병이든 부산경제, 한계점을 드러낸 대구의 섬유산업, 신용공황에까지 직면했던 광주·전주지역등.
지역별 부도율통계가 이같은 상황을 단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금년들어 서울지역의 어음부도율은 0.04∼0.05% 수준으로 매우 양호한 것이었다. 이숫자로만 보면 서울지역의 자금사정은 70년대이후 금년이 가장 좋았던 셈이다.
반면 지방기업들의 부도율은 최고 0.6%까지 넘어섰다. 서울보다 지방기업들이 4∼10배가량이나 더 많은 비율로 부도를 낸것이다.
이같은 부도율은 제2차 석유파동이 몰고왔던 대불황때와 맞먹는 수준이다. 최근 경기동향을 두고「안정적호황」이라는 정부진단은 적어도 지방경제에 관한한 어불성설이다.

<서울비대 지방빈곤>
부도규모도 종전과는 달리 대형화추세롤 보여 1백억이상짜리가 숱하다. 대구의 광명건설을 비롯해 정화·신일등의 학교재단, 전주의 영생학원, 마산의 광신건설, 제주의 명륜학원등 모두 수백억원의 빚을 안고 넘어졌다.
워낙 바닥이 좁아 큰 덩치 하나가 삐끗하면 「일파만파」로 번진다.
당장 돈줄이 마비되고 연쇄부도사태가 일어난다.
서울지역은 요즈음와서 대형부도롤 찾아볼수 없게된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부도율의 격차에서 보듯이 서울경제의 비대와 지방경졔의 빈곤은 바로 안팎의 관계다.
지방기업도산의 첫번째특징은 건설업체쪽에 집중적으로 몰려있다는데서 찾아진다. 지방경제를 꾸려나온 기반이 그만큼 허약하다는 증거다. 내놓을만한 제조업은 죄다 서울로 몰려가고 잔챙이 중소건설회사들이 지방도시의 골격을 형성해왔다.
그나마 지방건설업체로서는 이름을 냈던 부산의 미성·덕산건설, 대구의 광명, 마산의 광신을 비롯해 연쇄적으로 넘어진 학원기업들 역시 도산의 직접적인 동기는 모두 부동산투자,또는 건설불황에서 빚어진것 들이었다. 최근들어 대전지역 중소기업들의 도산이 크게 늘어난 것도 고속도로신설울 둘러싼 땅투기에 상당한 돈이 몰렸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금년들어 예산동결에 따른 정부공사감축으로 지방건설업체의 일거리가 대폭 줄어들었고 서울의 대형건설업체들의 덤핑공세는 더욱 심해졌다.
이같은 현상은 지방경제악화를 최근들어 다소 가속시킨 요인들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과도한 서울집중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돈이건 사람이건 모두 서울로 몰려든 당연한 귀결이다. 은행돈의 67%가 서울에서 돌고있고 전국제조업체(5인이상)의 43%가 서울에 몰려있다.

<덤핑공세에 맥못춰>
게다가 지방자금의 서울 역류현상은 갈수록 심각하다. 정책금융 성격이 강한 은행돈의 경우 그런대로 지방에서 돌고있으나 비교적 금리가 높은 단자회사·투자신탁·보험·상호신용금고등의 제2금융권에서 끌어들인 돈은 대부분이 서울행이다. 지역경제가 자생적으로 조성된 자금이 그 지역경제를 위해 투자되는것이 아니라 몽땅 서울기업들의 돈줄 노릇을 하고 있는것이다.
이러니 지방기업들의 자금난은 더욱 심해질수 밖에 없다. 돈이없으니 부실하고 부실하다는 이유로 금융기관은 지방기업들을 더욱 외면하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돈이 쌓여도 대출할데가 마땅치 않아 남아도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전북지역의 경우 제2금융권의 총예금이 2천4백84억원(84년7월기준) 이었는데 총대출은 2천75억원에 불과했었다.
정부도 이같은 현상을 시정하겠다고 수정5차계획속에서 밝혔으나 아직 실태조차 파악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서울집중정책은 조금도 누그러짐이 없다. 지방의 중소기업은 부도를 내도 서울의 큰기업은 부도를 낼수 없다는 원칙이다. 부도낼 기업을 부도안내게 돈을 대주면 그만큼 건실한 기업에 돌아갈 자금몫이 줄어든다.

<일터져야만 돈풀어>
그나마 구제금융을 받은 부실기업들은 발등의 불을 끄기위해 덤핑을 해댄다. 건실기업 입장에서는 부실기업 때문에 자금난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영업까지 어렵게 된다. 건설업종이 대표적인 예다. 해외건설에서 엄청난 손해를 입은 대형건설업체들이 「노느니 인건비라도 뽑자」는 식으로 덤핑경쟁을 치열하게 벌이는 판이니 지방 건실업체들은 근처에도 갈수없는 입장인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펴온 지방경제대책이란 일이 터져서야 부랴부랴 돈을 푸는 긴급수혈작전이 고작이었지 구조적인 접근은 한번도 없었다. 제2, 제3의 도시라는 부산·대구마저도 서울과의 격차는 더욱 현저하게 벌어져가고있다.
서울과 지방간의, 도시와 농촌간의 이중구조는 갈수록 심화되고있는데 이를 개별적으로 파악하는 아무런 통계지표조차 없다. 갈수록 빈혈증세를 일으키고 있는 지방경제를 언제까지 방치할것인가 두고 볼일이다. <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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