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무일적 세대」남의 일 같지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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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어김없이 입시의 철이 돌아왔다. 엊그제는 대학입학을 위한 학력고사가 전국적으로 시행되어 75만명이 시험을 치렀다.
자녀의 합격을 바라는 부모들이 기도를 올리거나 치성을 드리는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각 대학별로 입시요강이 발표되면 거기에 맞추어 이른바 눈치작전·배짱지원 등 한바탕 북새통이 벌어질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신분을 가르는 유일한 기준이 있다면 학력이란 말이 있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는 행세할수 없다고들 여기고 있다. 농민들이 문전옥답을 팔아 자녀들을 공부시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과잉투자」란 비판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이처럼 높은 향학열이 근대화의 원동력이 된것은 부인할수 없다.
실업계 고교에서조차 70% 이상의학생이 대학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판이니 고교에서의 교료과정이 온통 임시위주로 되어있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다.
인문계긴 자연계건 자신의 교양을 쌓는데 필요하다고 생각되어도 입시와 관계없는 요목은 거들떠 보지도 못하도록 시간표가 짜여져 있다.
지금과같은 대입제도가 시행된지 5년째. 제도상 문제가 많다는 아우성은 해마다 되풀이 되었다. 그 아우성은 내변봄에도 예외없이 일어날것이다.
그때마다 문교당국은 무슨 보완책을 발표한다고 나선다. 땜질을 하는 시늉을 한다. 그러나 그뿐이다.
대학교육만이 교육의 전부인양 인식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대학교육에 가려 다른 교육과정은 숫제 눈에 띄지 조차 않을 정도다.
인문고교교과목이 입시위주로 짜여진 것은 하나의 조그마한 예에 불과하다. 모든 길이 대학으로만 통하게 되어있는 현실이니 국민학교서 고등학교까지의 제도교육 모두가 뒤틀릴수 밖에 없이 되어있다.
하긴 교육문제로 고민하자 않는 나라는 세계어디에도 없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을 자랑하는 일본에선 이른바 「무목적세대」가 사회문제가 되고있다.
목표도 없고 장래를 향해 걸어갈 힘도 없이 무기력하게 시간이나 보내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종합상사의 젊은 간부사원중에 해외부임을 거절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시골에 돌아가 긴장이 적은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자도 있다는 것이다.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는 무기력한 쾌락지향은 현대일본인의 정신을 부식시키고 있다.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성향은 불우한 계층보다도 중산층이상의 젊은이들 사이에 질병처럼 번지고 있고, 특히 대졸의 엘리트조차 여기에 감염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일류기업 입사시험을 보는 엘리트들 가운데서도 권력조직의 암단을 오르려면 인격을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데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자가 많아지고 있다.
일본총리실 조사결과를 보면 대학생활에 만족하는 학생이 미국이 67.2%인데 비해 일본은 24.5%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불과 몇십년 전만해도 일본의 노동자는 대부분 중산층이 되겠다는 분명한 꿈을 지니고 있었다. 이른바 3C-카·쿨러·컬러TV란 3개를 갖고 싶다는 충동의 형태였다.
그런 개인적인 꿈이 경제적 기적을 이룩하겠다는 국가적 요구와 맞아떨어져 그결과 일본은 다시금 세계의 강국이 되였다.
그러나 날때부터 그런것을 갖게 된 젊은세대의 눈엔 아버지의 초과근무시간이 길고 쳇바퀴같은 일상이 따분하게 비칠수 밖에 없게 마련이다.
따지고보면 이런 얘기가 일본의 얘기일수만은 없다. 물질적인 풍요를 당연한줄 아는 세대가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6.25를 왜 모르느냐, 배고픈 사정을 왜 모르느냐고 아무리 다그쳐봤자 그런것을 경험못한 세대가 알아들을리가 없다.
교육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견해역시 일본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다.
대입학력고사를 공통으로 본결과 분석적사고와 창작성이 희생되었다고 식자들은 개탄한다. 시험점수에 나오지 않은것- 개성이나 능력, 용기나 인간성은 전적으로 무시되고 만다는 사정은 우리나라도 같다. 무목적세대란 문제가 일본처럼 표출될 단계까진 이르지 않았다고 해서 수수방관해도 좋은것일까.
경제발전단계가 떨어지니 우리는 별문제가 없다고 말할수 있을까. 청소년범죄에서 gms히 나타나는 맹목적인 탈선이 그런 의식의 싹은 아닐까.
일본이 저금 겪고있는 문제가 조만간 우리도 겪어야할 문제임을 생각하면 무작적 고도산업사회가 된다고 좋아만 할일도 아닌 것 같다.
무목적세대같은 엉뚱한 몸살을 앓지 않기 위해서도 지금부터 무언가 대비를 해야겠다. 다음 세대의 모습을 결정하는 것은 교육이다. 오늘의 교육현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그 동안 낱낱이 드러났다.
미국도 일본도 지금 교육개혁을 한다고 야단들이다. 그들을 뒤쫓아야하는 우리들이 손을 놓고 있어도 될일은 아니다.
학교교육 사회교육의 전반에 걸쳐 문제점을 점검, 다음세대가 분명한 목표를 갖고 그 목표를 확대재생산해 갈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다하는 것이 기성세대가 지금 당장 할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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