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당의 사시와 정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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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외적인 전략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일본 사회당의 원로정객5명이 서울에 와서 한국 정치인들과 접촉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다선 의원들일뿐 아니라 사회당의 창당과 운영에 깊이 관여해온 지도급들이다. 그중 「고바야시」의원은 이번 방한을 관철키 위해 당 외교위원장이라는 요직까지 사퇴했다.
말하자면 이들은 사회당의 우파인사들로서 친공적 교조주의로 일관돼온 당 노선을 수정하여 전방위·다변화·중립화를 시도하는 그룹이다.
이들의 며칠간의 언행을 살펴보면 그들이 비록 당략에 충실히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비교적 솔직하게 일본과 사회당의 과거의 과오를 반성하고 평양일변도의 자세를 시정하여 남북한 등거리를 추구하려는 노력을 읽을 수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현재는 당의 공식견해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당에서는 아직도 교조적인 친평양 집단이 우세하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이시바시」위원장은 사회당의 당권을 장악한 이후 집권태세를 강화키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친공일변도에서 탈피하려는 중립화노선의 추구다.
사회당은 미일안보조약을 반대하고 한국과 미국을 다같이 부인하면서 북한을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로 인정해 왔었다.
그 때문에 「이시바시」는 위원장 취임이후 금년 들어 미국과 중공·북한을 방문했으나 한국만은 방문할 수가 없었다.
만년야당이라는 사회당은 민사·공명당과 함께 3당 연정으로 집권 자민당에 도전할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민사·공명당이 한국과 관계를 맺고 있는데 유독 사회당만은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이런 딜레머를 해결키 외해 사회당은 한국의 문을 두드리지 않을수 없었다. 이번 원로 5인의 방한은 사회당의 공식적인 한국인정과 「이시바시」의 방한을 위한 전초작업이다.
방한단은 한국의 의회·정당 등과 공식채널을 개설하고 한국을 승인하며 남북한간의 중재 역까지 맡고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우리를 등졌던 사회당이 제발로 들어와 잘해보자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사회당은 서울에 오기에 앞서 일본 안에서 먼저 해야할 일이 있다.
우선은 당 노선의 정상화다. 일본정부가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로 인정한 한국을 부인하는 논리는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아직도 당내에서 수적 우세를 누리고 있는 친평양 교조주의자들의 저항을 극복할수 있는가.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사회당은 남북한 중재자로서의 자격을 얻지 못하는 것일 뿐 아니라 설사 그것이 해결됐다해도 중재자가 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사실을 알아주기 바란다. 우리는 일본 정부나 어느 정당의 중재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방해가 안되기를 바랄 뿐이다.
사회당은 먼저 재일 한인들에 대한 일본의 부당한 처사와 역사 교과서 왜곡문제, 한일무역역조, 첨단기술 이전문제의 해결에 앞장서서 스스로 올바른 대한자세의 정립을 입증해야한다.
이같은 일들이 사회당의 대한관계개선의 대전제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일본사회당이 새로운 국제환경에 적응하려면 사시의 교정과 정시의 회복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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