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고산집 감단자·비자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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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집에서 몇대를 이어온 전통 깊은 가문에는 그 전통과 어울리는 고유의 음식이 있다.
전남 해남에서 5백년 가까이 유서 깊은 고옥을 지키고있는 고산 윤선도(1587∼1671)의 가문은 겨울철 별식으로 감단자와 비자실을 만들어 둔다.
14대손인 윤형직씨(51·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82)는 감단자와 비자실이 겨울을 나는 과학적인 건강식이라고 소개한다.
감단자의 경우 감기예방과 소화기계의 강화에 도움을 준다. 또 비자실의 경우 기생충을 없애주어 체내를 깨끗하게 해준다는 것.
종부인 김은수씨(47)는 시집 와서 처음 배운 요리가 이 두가지라면서 요리법을 소개해 주었다.

<감단자>
익기 직전의 떫은 감을 가마솥에 넣고 감분량만큼의 물을 부은후 껍질이 허물어질 정도로 고면 갈색의 즙이 나온다. 이 즙을 참체에 걸러 농도짙은 액체를 만들어 둔다.
감즙을 술에 다시 부어 끓이면서 곱게 빻은 찹쌀가루를 조금씩 섞어가며 잘 젓는다.
감속에 찹쌀가루를 넣으면 곧잘 멍울이 생기는데 저으면서 이 멍울을 잘 풀어내야 한다. 찹쌀의 분량은 감즙의 분량과 비슷하게 해야 맛이 좋다.
찹쌀을 다 섞어 넣은 후 소금과 조청으로 간을 맞춘다. 찹쌀 1되의 분량이라면 소금은 반티스푼을 넣고 조청은 감미가 약간 더해질 정도만 넣는다.
저을때 주걱이 삑뻑해질 정도가 되면 불에서 내려 항아리에 담아 저장한다.
잘 만든 감단자의 경우 항아리에 넣어 겨울철 상온에 그냥 두면 두달정도 굳지 않는다. 냉장고에 저장한다면 겨울 한철 좋은 간식거리가 될수 있다.
항아리에 저장한 감단자는 꺼낼때 갓 만든 인절미처럼 처지는데 먹을때 알맞게 고물을 묻혀 내놓는다.
감의 달콤한 맛과 찹쌀의 차진 성격이 어울려 겨울철일미로 꼽을 수 있다.

<비자실>
비자는 기생충약이나 소독약의 원료로 많이 쓰이고 있으나 식품으로는 발달돼 오지 않았던 열매다. 그러나 땅콩같이 생긴 고소한 맛의 비자를 볶아 조청을 묻히고 깨를 뿌려놓으면 훌륭한 간식거리가 된다.
산에서 주워온 비자열매를 항아리에 넣고 누룩 띄우듯 더운 곳에서 띄우면 자체에서 물이 생기며 1주일만에 겉껍질이 벗겨진다. 그 속에서 또 딱딱한 껍질이 나오는데 햇볕에 5∼6일간 말려둔다. 말리면 속의 열매가 껍질과 떨어지면서 달그락 소리를 낸다. 또 말림으로써 떪은 맛이 없어지고 고소한 맛을 띠게 된다.
껍질을 또 한 꺼풀 벗기면 밤의 속껍질 같은 것이 나온다. 마지막 속껍질은 프라이팬에 비자를 볶다가 물을 한방울 떨어뜨리면 말끔히 벗겨진다.
속껍질까지 말끔히 벗겨지면 흰색의 비자가 나오는데 여기에 찹쌀엿을 고아 비자에 묻히고 껍질을 벗긴 참깨에 굴려 낸다.
술안주나 간식용으로 나무랄데 없는 것으로 가을에 비자를 따서 비자실을 만들어놓고 1년내내 즐길수 있다. <김징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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