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살이 고통도 못 꺾은 배움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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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986년 중국 하얼빈(哈爾濱)에서 1남3녀 중 둘째로 태어난 왕리(29·여·사진)씨. 어렸을 때 그림을 잘 그려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집이 가난해 중학교를 중도에 그만 뒀다. 소아마비를 앓던 어머니가 농사일로 다리를 다친 뒤에는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렸다. 그는 “당시 공부를 잘하던 언니와 어린 두 동생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내 꿈을 꿔본 적이 없다”고 회고했다.

 중국동포이자 결혼 이주여성인 왕씨는 한국에서 검정고시로 고교를 마친 ‘억척 여성’이다. 2009년 8월 친구 소개로 한국 남자와 결혼해 울산 동구에 정착한 그는 서투른 한국말을 익히기 위해 식당에서 일하는 틈틈이 동구다문화센터에서 한글을 공부했다.

 2012년 8월 식당 여사장이 왕씨의 이런 모습을 보고 초등학교 검정고시 시험을 소개했다. 왕씨는 한 달가량 공부해 초등 검정에 합격했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검정고시 도전을 그만두고 식당일을 계속했다. 그러다 2014년 3월 골반염으로 한 달간 병원에 입원했다. 그때 왕씨는 “고난을 극복해 나도 남들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고 다짐했다.

 퇴원 후엔 성격·문화 차이로 남편과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다. 왕씨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독립해 중구다문화센터의 도움을 받아 중학교 검정고시 학원에 다녔다. 5만원에 구입한 낡은 자전거로 20분을 달려 학원을 오갔다. 수업에 빠지지 않고 복습도 철저히 했다. 주말에는 식당과 공장에 나가 생활비를 벌었다.

 지난해 9월엔 중학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곧바로 고교 검정을 준비했다. 이해될 때까지 책을 읽고 또 읽은 끝에 지난달 4일 고교 검정고시에도 합격했다. 다음은 중국어 자격증을 따서 외국어 전형으로 국립대에 진학할 생각이다.

하지만 대학 학비 걱정이 태산이다. 그는 “대학 졸업 후 한국과 중국을 잇는 무역업에 종사할 생각”이라며 “공부하면서 뭔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킨 만큼 결코 배움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유명한 기자 famo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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