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고생의 일본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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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두 여고생이 눈을 감은채 볼펜을 쥔 오른손을 마주잡고 책상앞에 앉아있다.
옆에는 젊은 선생님 한분이 재미있다는듯 웃으며 바라보고있다.
『분신사마,분신사마,우리선생님 사모님의 성씨가 무엇입니까?』
주문이 계속되는동안 힘없이 움직이던 볼펜이 멈췄다. 흰종이위에 둥글둥글한 그림이 그려져있었다.
『사모님이 김씨지요?』 도저히 글씨로 보기 힘든데 학생들은「김」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김가가 아닌데….』
선생님이 실망한 표정을 짓자 『그럼 진짜 사모님 말고 숨겨놓은 분이 또 있나보죠 뭐』학생들이 까르르 웃었다.
스승과 제자가 어울려 점을 치고있는 것이다. 일본말로 주문을 외며….
토요일인 10일낮 서울S고 생활지도부실에서 목격한 광경이다.
취재를 시작할때 『설마…』했던 일본점의 위력은 대단했다. 도심지의 K, J여고나 변두리의 S고, S여고등 고루 퍼져있었다. 교문앞에 서서 귀가하는 여고생들에게 「분신사마놀이」를 물었더니 모른다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아침 수업시작전 쉬는시간·점심시간의 교실을 휩쓴다는 것이다. 심지어 취재하러간 기자외 나이를 맞힌다며 눈을 갑고 주문을 외어댈 정도로 열병을 앓고있었다.
중3여학생들도 아는 학생이 많아 점점 번져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2살때 죽은 미국아기나 8살때 죽었다는 일본소년의 혼령이 찾아와 가르쳐 준대요.』 그럴듯하게 꾸며서 덧붙이는 학생도 있었다. 어떤 여고생은 일본에 살던 한 여고생이 잠실로 이사온후부터 이 점놀이가 유행했다고 알려줬으나 확인할 길은 없었다.
일본에서는 10년쯤전에 경마등의 도박장에서 젓가락을 들고 주문을 외어 우승말 알아맞히기가 유행하다 정신병자가 속출하면서 사회문제화한후 없어진 적이있다. 일본에서는 젓가락인 신장이 우리나라에서는 볼펜으로 둔갑했을뿐 방법은 똑같은 셈이다.
영혼을 자유자재로 부른다는 심령연구가 까지도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학생들의 이같은「신대잡기」가 지극히 위험한일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주체성·주관이 약해지고 판단려이 흐려지며 정신질환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합리와 과학의 배움터인 학교에서 유령점의 성행. 교육학전공의 어느 교수님은 한마디로『해괴한 일』이라고 했다. 어린 학생들이 뜻도 제대로 모르는 일본말 주문을 외고있는 모습은 또다른 한면에서 심각한 우려를 안긴다. 한일친선, 한일교류가 이런 형태의 것으로부터 시작돼서야 될말인가. 일본의 배울것을 배우는 지혜와 방향감각이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어른들부터 똑바로 서야할것이란 생각이다.
취재를 위해 만나본 중·고교 선생님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르는 일』이라며 외면했다.어느한곳 이에대한 대책을 세우는 학교는 없었다.
알고도 모르는체 하는 것인지, 정말 모르는 것인지 어느쪽이든 교육이 학생생활과 유리돼있다는 느낌만은 지울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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