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괴질"…당국은 무얼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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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갑자기 고열이 나면서 몸이 떨리고 두통과 근육통이 나면 누구나 감기쯤이려니 생각하고 적당히 넘기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윽고 피 섞인 가래가 나오고 폐출혈증세를 보이다가 갑자기 숨이 넘어가 버리는 날벼락이 떨어져 온 식구가 약 한번 못써보고 망연자실, 통한한다.
이 까닭 모를 급병이 한두 집에 그친 것이 아니고 지난 9월부터 강원도와 전남지역에서 무려 81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그중 13명이 이렇게 죽어간 것이다.
이 병이 금년에 처음 발생한 것이라면 문제가 덜 심각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괴질의 증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무려 10년 전부터라고 한다.
75년도에 경기도 나주·이천지역에서 처음으로 21명의 환자가 발생하여 이중 11명이 숨졌다. 76년에는 충남북·강원도에서 80여명이 발병, 평균 34%의 사망률을 보였다고 하니 그 동안 보건당국은 무얼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1일 보사부는 이 괴질의 병인이 「박테리성 세균인 렙토스피라증」이라고 발표했다. 이 결론을 얻어내는데 10년이 걸린 것이다.
병원균을 찾는데는 단 1개월이 걸렸고, 찾기로 결심하기까지 그토록 긴 세월을 요했다. 보건당국이 보다 일찍 괴질의 병원균 규명과 치료방법 모색을 서둘렀다면 그 동안의 희생자 수는 훨씬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괴질의 공포로부터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시골구석 몇 군데서 일어나는 괴질쯤이야 며칠만 지나면 저절로 수그러들겠지 하는 생각으로 현지 행정기관이나 일선 보건소가 외면하고 중앙에 보고를 하지 않았거나, 보고를 받은 중앙도 저절로 낫기를 차일피일 기대하며 뭉그적거리고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뒤늦게나마 괴질의 정체를 밝혀냈다는데 일단 안도를 느끼며 다행스러워 했다.
그러나 문제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 것 같다.
이 괴질의 정체가 박테리아라는 보건당국의 결론에 대해 대한의학협회에서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의학협회의 위촉으로 병원체 규명작업을 벌여온 고려대 의대 교수 팀은 이 질병이 『세균이나 곰팡이에 의해 전염되는 보통 폐렴이 아니라 들쥐에 의해 옮겨지는 바이러스성 폐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보사부가 발표한 박테리아에 대한 반응은 이 병에 걸린 환자의 혈액이나 소변에서 일체 얻어내지 못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보사부의 발표로는 『국립보건원 역학조사반이 94명의 환자 중 2명의 가검물에서 렙토스피라 박테리아균을 찾아냈고 발병지역에서 잡은 17마리의 들쥐가운데 3마리에서 같은 균을 발견했으니 이병이 렙토스피라증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의대교수 팀은 『수많은 환자중 단 2명으로부터 균을 분리해냈다 해서 병원체를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 환자들의 증세도 지금까지 미국과 일본에서 발생했던 렙토스피라병과는 그 증세가 전혀 다르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가지 병증을 놓고 당국과 의사들의 연구결과와 견해가 다른 것이다. 이를 놓고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 가타부타 참견할 처지는 물론 아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엄연히 죽어가고 있는 현실에 있고, 그 원인은 아직도 잘 모른다는데 있다.
인명을 앗아가는 질병, 더군다나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괴질의 발생에 대처하는 당국의 태도는 너무 안일한 것 같다. 지체 없는 접근과 연구는 서둘러야 하되, 그 결론을 내리는데는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고 본다.
10년 동안 미뤄오던 병원균 규명을 여론이 시끄러워지자 급히 착수하면서 간단한 검사로 일단 추정을 해놓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균의 표준혈청을 외국에 발주하는 것 등은 본말이 뒤바뀐 감이 없지 않다. 단정은 일단 해놓고 그 증거를 보완하는 식이 아니라 모든 자료를 검출·확인한 다음 최종 결론을 내리고 치료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의학계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상반된 의견이나 연구결과를 일방적으로 발표하면 일반인은 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보건당국이나 의료인이나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질병치료와 예방을 책임지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번 괴질의 경우도 의견이 서로 다른 당국과 교수 팀이 합동으로 괴질의 정체를 규명하는데 협력, 서로의 미비점과 이견을 보충하여 한가지 결론에 도달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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