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중심적 사고|이혜성<이대교수·심리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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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로맨스와 스캔들의 차이는 자기와 관계될 때에는 로맨스이고 다른 사람과 관계가 있을 때에는 스캔들이다.』요즈음 들은 재담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가슴 아픈 사랑이라도 다른 사람의 일일 때에는 스캔들이 되고, 너절하고 품위 없는 사랑이라도 자기의 일일 때에는 로맨스로 여긴다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인간심리의 한 면을 재치 있게 나타낸 말이다.
실제에 있어서 우리 인간들은 남을 이해하는 일에는 한없이 인색하여 조그만큼도 변명의 여지를 주지 않으면서 자기를 이해하는 데에는 끝없이 너그러워 항상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인 것 같다.
다른 사람이 제 시간에 일을 못 마치면 그는 게으르고 나태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자기가 제시간에 일을 마치지 못하면 자기는 너무 하는 일이 많아 바쁘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다른 집 아이가 떠들고 못되게 굴면 그 아이를 버릇없이 막 길렀다고 하면서 자기의 아이가 그러면 활기 있고 구김살 없이 잘 키웠다고 좋아한다.
나이든 사람들은 요새의 젊은이들이 실리적이고 지악스러우며 예의가 없다고 탓하고, 젊은 사람들은 요새의 노인네들이 바라는 게 많고 어디에나 주착없이 참견하려고 한다고 탓한다.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사고의 흐름은 그 누구의 말도 믿으려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자기 본위적 기준으로 모든 사물을 판단하고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도록 우리를 유도한다. 그러는 와중에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틈도 없이 다른 사람들을 자기의 느낌과 생각대로만 속단하면서 가진 것 이상으로 보이려하고 아는 것 이상으로 떠들며 살아가느라 분주하고 고달프다.
현재 우리사화에 팽배하고 있는 극과 극의 심각한 대치, 남의 입장 따위에는 조금도 관심을 갖지 않는 무례와 무질서, 그리고 떨쳐버릴 수 없도록 깊이 뿌리 박혀 있는 불신감 같은 것도 이런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본위적인 유아기적 사고방식의 결과에 기인한다고 본다. 이러한 유아기적인 사고방식이 우리들의 인간적인 성숙을 가로막고 우리들의 사회를 건강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끊임없이 감동시키는 성인들이나 위인들의 삶은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하면서도 자기에게는 엄격한, 참으로 성숙하고 덕스러운 태도로 일관되어 있음을 본다.
이 가을에 열매가 익어서 껍질을 깨고 나오듯이 우리도 유아기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찾고싶은 마음이 푸른 가을하늘처럼 높고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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