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로」의 후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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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어느날 신문을 펼치니 2면에 위·아래로 『「페라로」마피아와 관련혐의』「레이건」,「마르코스」지지』라는 제목이 툭튀는 글자로 눈에 들어왔다. 그 제목을 읽는 순간 기분이 몹시 착찹해졌다.
「페라로」라면, 한국인의 삶에 총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의 여성지위 향상의 또다른 국면을 보여준 상징성을 가진 이름이다.
그 이름이 남편재산의 정밀조사에서 40년전에 있었던 부모의 체포사건까지 들춰지더니 마침내 선량한 소시민에겐 혐오감의 자극제 같은 이름인 마피아와 관련이 있다는 혐의를 받기에 이르른 것이다.
「페라로」는 그의 친구에게 이런 선거전에 격분해서 부통령출마를 후회한다고 말했고 「먼데일」후보진영을 당황하게 했단다.
「페라로」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이야기들이 사실일지라도 씁쓸한 기분은 가셔지지 않을 것이다.
그가 여자이기 때문이다. 「레이건」진영을 자극하는 것도 바로 이 『여자 「페라로」』이다. 여자라는 사실의 낯선 적이 유권자들에게 작용할 변수가 도무지 못마땅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런 현상을 여자인 나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남자들은 여자의 삶을 『갈대와 같은 마음』『연악한 몸』으로 규정지어 놓고 보호하고 착취하고 섭렵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페라로」는 「동등하게」유권자들 앞에 선 것이다. 술자리에 나란히 앉은 것과는 전혀 다른 뜻으로.
이제 남성취미라고 말할수 있는 것들은 사라질 것이다. 이것은 남자들에겐 불쾌하고 당혹스러운 노릇이겠지만 여자들에겐 인간으로의 삶을 위한 끝없는 시련중의 하나일 뿐이다. 「페라로」를 격분케한 그 치사하고 환멸을 느끼게 하는 현실로 인하여.
또 세계를 움직이는 힘의 상징인 남자 「레이건」은 세계의 지탄을 받는 「마르코스」정권을 지지할 수 「밖에」없다고 하였다.
「밖에」없는 이유도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은 남자들의 인도주의, 남자들의 정의감, 남자들의 민주의식 등등을 뭉뚱그려 이해하게 해준다.
남자들의 한계인 것이다. 이것은 지금 우리여자들의 한계이며 전력을 다해 극복해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내가 어쭙잖게 「페라로」를 들먹이며 흥분하는 까닭은 한국의 매맞는 아내들에 대해 왜 그리 말이 많으냐, 여성천국이라는 미국에도 매맞는 아내의 피난소가 있다더라고 하는 남자-그 환경속에 갇혀 있는 우리네 여자의 삶에 숨통이 막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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