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터 “비난한 사람 잊지 않겠다” … 유럽, FIFA서 분리 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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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은 5선에 성공하며 2019년까지 임기를 연장했지만, 집행부 비리 규명을 포함해 ‘FIFA 개혁’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짊어졌다. 선거 과정에서 반기를 든 유럽축구연맹(UEFA)을 감싸안는 것도 과제다. 30일 FIFA 집행위원회 직후 공식 인터뷰에 참석한 블라터 회장. [취리히 AP=뉴시스]
미셸 플라티니

“용서는 하겠지만 잊지는 않겠다.”

 5선에 성공한 국제축구연맹(FIFA) 제프 블라터 회장의 30일(현지시간) 일성이다. 17년간 ‘세계의 축구 대통령’이었던 그는 전날 FIFA 총회에서 수성을 확정지었다. 1차 투표에서 133표를 얻었다. 당선 기준인 139표(3분의2)에 모자랐으나 2차 투표에서의 당선(105표)은 너끈했다. 73표를 얻은 도전자인 알리 빈 알 후세인 요르단 왕자는 결국 사퇴했다. 미국·스위스 사법 당국이 FIFA 고위 간부 7명을 부패 혐의로 체포한 이후 블라터 회장이 흔들린다고 보고 알리 왕자 측은 “최대 100표도 가능하다”고 기대했었다. 블라터 회장의 17년 아성이 견고했던 셈이다.

 블라터 회장은 이후 스위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참았던 말을 쏟아냈다.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을 포함해 나를 비난했던 사람들을 용서하지만 잊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FIFA 회장 선거 이틀 전에 미국이 공격하고, 플라티니 UEFA 회장도 사퇴하라고 가세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2022년 월드컵 개최를 희망했지만 무산됐고, 영국도 2018년 월드컵 개최를 하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북미나 남미와 관련된 일을 취리히까지 가져온 것은 FIFA 총회를 방해하려는 미국의 의도”라고 말했다. 2018년과 2022년 유치전에서 패배했던 영국·미국이 분풀이하는 것이란 취지다. 그는 영국축구협회장인 그레그 다이크 등이 대놓고 “임기를 다 못 채운다”고 말한 데 대해서도 “사임한다는 건 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4년 간 부정부패와 맞서 싸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미국·유럽을 중심으로 여진은 계속됐다. 아스톤빌라의 팬이기도 하고 2018년 월드컵 유치전에 적극적으로 뛰었던 영국의 윌리엄 왕세손은 이례적으로 성명을 냈다. “FIFA는 페어플레이를 대표하고 축구를 최우선으로 챙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스폰서와 지역축구연맹 등 FIFA를 후원하는 사람들이 FIFA의 개혁을 압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이번 주 취리히에서 벌어진 일(FIFA 간부들 체포)은 ‘FIFA판 솔트레이크시티 사건’”이라고 했다. 2002년 겨울올림픽을 솔트레이크가 유치하는 과정에서 국제올림픽위(IOC) 위원들에게 과다 접대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IOC가 IOC위원 10명을 쫓아낸 일을 거론한 것이다.

 다이크 영국축구협회 회장은 “우리만 월드컵을 보이콧하는 것은 별 소용이 없지만, 나머지 유럽 국가가 보이콧하기로 결정한다면 우리도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플라티니 UEFA 회장은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한 발 더 나아가 UEFA를 FIFA로부터 분리시켜 독립 기구화하는 방안 논의에 들어갔다. 그럴 경우 FIFA가 주최하는 국가대항전인 A매치에 UEFA가 소속 선수들의 출전을 금지시킬 수도 있다.

 유럽은 연간 13억달러(1조4400억원·2013년 기준)에 달하는 FIFA의 수입 중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자금줄이기도 하다.

 그러나 FIFA 회장 선거를 보이콧하겠다던 UEFA가 결국 투표에 참여했던 점을 감안하면 실제 보이콧이 성사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당장 스페인은 블라터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의 축구 전설인 프란츠 베켄바워는 “FIFA와 UEFA의 극단적인 대립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대화뿐이다. 이런 사태는 축구 자체를 위해서도 해롭다”라고 말했다. 또 블라터 회장이 다짐대로 개혁 조치를 할 수도 있다. 그는 당선 연설에서 “후임자에게 보다 강한 FIFA를 물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블라터 자신이 비리와 무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능하겠냐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

 현재 단기적으로 칼을 쥐고 있는 건 서구의 검찰들이다. 이번 사건을 시작한 미국은 물론 스위스와 영국도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또 다른 체포 광풍이 분다면 블라터가 하루 이틀 흔들리는 정도로 끝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서울=송지훈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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