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업는 10월에「박정희시대」를 돌아본다|최정호(연세대교수·신방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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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무리 지랄같은 세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내가 살아온 세상이다. 이 세상말고 저것이 내진짜 세상이었다고 내세울 다른 세상이 나에겐 없고, 앞으로도 이와는 전혀 다른 새 세상이 개벽되리라고 허튼 기대를 품어볼 나이도 지나버렸다.
어려서 12년동안은 일제의 식민지 치하에서 자랐다. 8.15해방을 맞자 광복의 환희도 일순간이오, 그로부터 3년은 정치테러와 암살이 꼬리를 무는 좌우격돌의 미군정하에서 과도기를 살았다.
마침내 갈라진 땅에서 독립정부가 수립되더니 신생 공화국은 6.25동족전쟁이라는 끔찍 참담한 대홍역을 치렀고 그 전후시대는 이승만박사의 권위주의적 통치체제로 경직화해버렸다. 그 속에서 우리는『오직 한번 뿐, 두번 다시없는…』청춘을 불사르고 말았다.
아아, 4.19! 이제야 카키색지프의 미군이 선물해준「박내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우리 국민이 피로써 쟁취한「자생의 민주주의」가 이땅에서 그 피를 거름삼아 갈 자라나줄 줄 믿어보았다.
그러나 그 감격도 또한 잠깐이고, 이내 5.16쿠데타가 피한방을 흘리지 않고 제2공화국의꿈을 무산시켜버리면서 그로부터는 길고 긴 박정희장군의 장기집권이 시작되었다.
박대통령의 통치가 얼마나 길었는지는 특히 대학의 캠퍼스에서 별나게 실감될 수가 있었다.
대학의 강단에 선 교수가 일제시대·미군정시대·자유당시대·민주당시대·공화당시대로 다섯시대를 살아왔다고 한다면 강의실의 학생들은 오직 한 대통령의 초상화밑에서 국민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에 진학해온 문자그대로「박정희시대의 아이들」이었다.
박정희 장군의 집권·통치기간은 사선에서 차질한 이승만대통령보다도, 또는 사선에 성공한「루스벨트」대통령보다도 5,6년이 더 길었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전역사,「히틀러」제3제국의 전역사보다도 다시 5, 6년을 더 장수하고 있었다.
10월이란 달은 바로 그러한 박정희시대를 많은 한국사람이 새삼 회고케되는 달이기도 하다. 63년 10월의 선거로 박정희장군은 제3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72년 10월 박대통령은 제2의 쿠데타로「유신」통치의 막을 얼었다. 79년 10월 박대통령은 김재규가 쏜 총탄으로 비명에가고 그로해서 그의 18년통치에 막을내렸다.
한국 현대사에 그처럼 긴 기간동안 군림했던 박정희 시대란어떤 시대였던가. 그가 통치하는 한국의 60년대, 70년대란 도대체 어떠한 시대였는가? 이것은 비단 개인을 초월한「역사」의 문제 제기일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산 동시대인에겐 매우 개인적인「실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박정희 시대란 오늘을 살고있는 모든 한국인에게 그들생애의 가장 긴 시간을 주름잡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서둘러 앞세워 본다면 이른바「소리없는 다수」로서의 많은 한국인들은 박정희시대에 대해서 누구나 어느정도는 일종의「정신분열증적」(Schizophrenic)평가를 하고있는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나는 언젠가 영남지방에 산업시찰을 갔다가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인이『나는 모든 걸 긍정적으로만 보려고 합니다』라고한 얘기를 감명깊게 들은 일이 있다.
그리고 그 분을 내심 부러워하기까지 하였다. 세상을 그처럼 일방적으로 단순화해서 긍정적으로만 볼수있다면야 얼마나 행복하고 후련하기 조차 할것인가 하고….
그 반면 이즈음은 박대통령치하의 60년대, 70년대를 온통 새까맣게 먹칠해서 부정적으로만 그려주고 있는 폭로기사들이 쏟아져 나와 그 얘기들도 나는 감명깊게 읽고 있다. 그리고 그 연대를 그처럼 전면 부정할수 있는 사람들을 내심 부러워하기 까지 하고있다. 세상을 저처럼 일방적으로 단순화해서 부정적으로만 볼수가 있다면야 얼마나 후련하고 행복하기 조차 할것인가 하고….
그러나 정치의 드라머가 연출되는 무대뒤를 들여다 볼수 없는 객석, 로열박스가 아니라 난시청의 3등객석에서 내가 경험한 한국의 60년대, 70년대는 그를 긍정적으로만 그려볼수 있기에는 현대사에 유례드문 1인 장기집권의 연대, 4.19의 피로얻은 민주주의가 역퇴전한 연대, 시민의 기본권이 중세기적인 위축을 강요당한 연대였다.
그러나 또 내가 경험한 한국의 60년대, 70년대는 그를 부정적으로만 먹칠해버리기에는 이 나라의 농촌이 수천년래의 빈곤에서 벗어난 연대, 한국경제가 국내자본의 축적도 없이 1,2차의 에너지 위기와 세계시장의 새로운 보호주의 장벽을 뚫고 서독·일본에 이어「전후의 제3기적」을 낳았다고 해외에서 평가된 연대, 지속적인 고도성장을 성취한 연대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내가 구경한 한국의 60년대, 70년대는 한쪽에 박대통령의 카리스마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그의 카리스마를 위협할 만한 야당과 지식인의 목소리가 세계에 메아리지기도한 연대였었다.
『나는 박대통령에 의해서 한국이 너희 당대에 근대 산업국가로서의 초석을 다지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박대통령의 반대세력에 의해서 한국이 너희 당대에 근대 민주국가로서의 초석을 다지게 되리라는 것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것은 70년대 중반에 한국사정에 밝은 유럽의 어느 외교관에게 들은 말이다. 10.26의 5주기를 맞는 소리없는 10월에 새삼 되씹어보는 말이다.
박정희시대… 그건 도대체 어떠한 시대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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