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즐거움(생각하는 삶을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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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플라톤」 의 『국가론』 (Politeia)은 거의 모든 철학적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철학자들에게는 가히 하나의 『경전』으로 취급될만 하다.
『에밀』 (Emile)로 유명한「루소」 (J.J. Rousseau)에게는 그것이 위대한 교육의 지침서로 비치기도 했다.
「플라톤」이 그려본 이상적인 국가는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강한 집단일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선한 집단이어야 했으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국가 전체가 도덕적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도장인 동시에 철인의 양성소가 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플라톤」 은 실제로 구체적인 교육과정을 제시하며 왜 그것이 그렇게 짜여져 있지않으면 안되는지를 설명한다. 예를들어 국민학교 시절에는 상상력을 길러주기 위해 신화를 가르치나 사춘기 초반에 들어서서 감수성이 예민해지면 시짓는법과 음악을 배우도록 하고, 그 다음 사물에 대한 판단력이 생기기 시작할 때는 수학을 통해 정신적 수련을 쌓도록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다음 18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군사교육을 비롯한 신체의 단련에 주력하고, 그렇게 해서 심신이 잘 조화된 하나의 인격을 배출해 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시민에게 적용되는 의무교육같은 것이고 이 과정이 끝나면 선발시험을 치르게 하여 능력과 소질에 따라 소정의 고등교육을 15년간이나 받게된다.
여기서 다시 선발시험을 치러서 소위 엘리트들을 추려내고 이들에게 실무를 통한 교육과 진리의 인식을 위한 변증법을 터득시킨다음 50세가 되어 이들중에 선의 이데아를 간파한 자가 드디어 철인인 동시에 통치자로 추앙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플라톤」의 이「철인 왕」 은 과연 누구인가. 그것은 「선의 이데아」를 본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있는한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러니 「플라톤」 자신도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을 피하고 여러가지 비유들을 제시할 뿐이다. 그중에 「선분의 비유」 라는 것이 있다.
「플라톤」 에 의하면 우리가 사물에 관하여 아는 수준은 억견(doxa)과 진지(episteme) 로 구분될수 있다.「억견」은 다시 희미한 그림자를 보면서 사물에 대한 억측을 하는 단계와 감각기관을 통해 어떤 사물을 접하고 이에 대한 견해를 갖는 단계로 나뉜다. 한편「진지」는 이성의 눈을 통하여 사물을 파악하는 능력으로서, 이것도 수학적인 방법을 써서 사물의 본질과 구조를 추상적으로 파악하는 단계와 변증법을 구사하여 사물의 형상(이데아) 그 자체를 파악하는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비유를 통하여 「플라톤」이 말하고자 하는것은 사물에 대한 인식에는 적어도 4단계가 있으며 어떤사물을 하나의 이데아로 인식할수 있는 최후와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성된 인간이라고 할수있으며 동시에 이상적인 통치자의 자격을 갖출수도 있게된다는 사실이다.
이점을 좀더 분명히 묘사하기 위하여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첨가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실존적 상황은 깊은 동굴에 갇혀서 쇠사슬에 묶인채 벽에 비친 희미한 그림자를 바라보다가 죽어가는 죄수들의 삶과 같다는 것이다. 여기서 교육의 사명은 인간으로 하여금 사슬을 끊고 굴레에서 벗어나 마침내 동굴을 탈출하도록 인도하는데 있으며 그리하여 동굴밖에 펼쳐진 그 현란한 풍경과 영롱하게 빛나는 물체들을 직시할수 있도록 돕는데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모든사물을 비춰주는 태양 혹은 「선의 이데아」 까지도 볼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철학교육의 목표가 된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러한 이상이 좀처럼 실천에 옮겨질수 없는 것이 또한 인간의 상황임을 간과하지 않는다. 그는 이 비유에서 동굴을 뛰쳐나오는 한 사람의 죄수를 그려내고 있으나 그가 다시 돌아가서 동료 죄수들에게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희미한 횃불에 비친 그림자들뿐이고 우리의 세계는 어두컴컴한 동굴속에 지나지 않음을 설파하자 오히려 그는 찢겨죽음을 당하고 만것이다.
여기서 「플라톤」은 진정한 교육의 목표는 쇠사슬에 익숙해지는 방법을 터득시키는데 있지않으며 철학의 사명또한 동굴속의 횃불을 창공에 빛나는 태양으로 착각하도록 돕는데 있는것이 아님을 설파하고있다. 횃불이나 그림자에 익숙해지면 철학적 교육은 귀찮은 일이되고 진정한 의미의 철학자나 교육자는 위험한 인물로 간주되는 것이다.「플라톤」은 오늘날 대학의 원형이라고 볼수있는 아카데미 (akademeia)를 설flq하여 변증법과 이데아의 이론을 가르치며 완숙한 인간을 길러내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입구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드나들지 말라』고 표시해 두었다. 사물을 수학적 직관과 통찰력으로 꿰뚫어 볼수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였으면 완전한 인간 혹은 철인왕을 양성하는「대학」의 문을 함부로 기웃거리지 말라는 뜻이다.
「플라톤」은 동굴속에 갇혀있는 죄수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죄수들을 인도하여 탈출시킬수 있는 단 한사람의 철학자라도 배출시키기 위하여 참으로 재능있는 인재만을 뽑아 정교육에 힘썼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수기치인」의 이상을 품고 노나라를 뗘날수밖에 없었던 공자의 운명을 나누었을 뿐이었다. 그는 시실리섬에 가서 「디오니소스」 2세를 철인왕으로 교육해보고자 하였으나 불과 수개월만에 쫓겨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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