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 폭리 돌려받자" 계약자 줄소송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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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동백택지지구의 아파트 분양가 담합 혐의로 업체 관계자들이 구속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입주 예정자들은 "건설사들이 폭리를 취했다"며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건설업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주먹구구식으로 분양가를 정하는 현행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 담합이냐 조정이냐=2003년 7월 동백지구 동시분양에 참여한 한 업체 관계자는 "당시 주택시장이 나쁘지 않아 웬만큼 분양에 자신이 있었지만 5.23 조치로 분양권 전매제한 지역이 확대된 직후여서 불안한 측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분양가 산정 당시 업체들의 눈치보기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S건설 관계자는 "업체 관계자들끼리 분양가와 관련한 협의는 했지만 담합이라기보다는 가격조정의 성격이 짙었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이나 공정거래위원회는 "인근 아파트 시세가 평당 673만원 정도였는데 2003년 7월 말 분양된 동백지구 분양가는 일률적으로 평당 700만원 안팎이었다"며 "이는 담합의 증거로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분양가 담합이 인근 아파트 가격을 높이고 다시 다음 분양가를 올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고리를 잘라야 할 필요가 있어 수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가격 담합은 내집마련을 원하는 서민에게 피해를 주며 건전한 경쟁을 해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업체 관계자는 "분양가가 다소 비쌌던 것은 당시 용인시가 도로 등 기반시설 추가 설치를 요구함에 따라 부담이 늘어난 때문"이라며 "앞으로 법원에서 우리 입장을 충분히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 업계 관행 사라질까=건설업계는 앞으로 동시분양 분양가 담합이 거의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지난해 6월 공정위가 동백지구 분양가 담합 혐의를 조사한 직후 화성 동탄지구 시범단지에서 6000여 가구를 동시분양한 업체들은 아예 관련사 회의도 꺼렸을 정도다. 이후 두 차례 더 진행된 동탄 신도시 동시분양 때도 분양가 담합이 전혀 없었다는 게 업체들의 주장이다. 11월에 2만여 가구가 동시 분양되는 판교 신도시도 담합의 여지는 거의 없다. 전용 25.7평 이하는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돼 가격 통제를 받고 중대형아파트도 평당 1500만원 이내에서 분양가를 결정한다는 정부 방침 때문이다.

업계는 이번 수사가 업계의 관행을 무시하고 이뤄진 무리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지금까지의 주먹구구식 분양가 산정은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주변 시세를 먼저 파악한 뒤 분양가를 산정하는 비과학적인 방식이 이런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아파트값 거품빼기운동본부 김헌동 본부장은 "소비자들에게 좋은 품질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업체들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담합은 적극 막아야 한다"며 "1999년 분양가 자율화 이후 공급한 택지개발지구와 서울 동시분양 아파트로 담합 혐의 조사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소송 이어질 듯=지난해 6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동백과 죽전지구에서 아파트를 분양한 13개 업체에 25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데 이어 이번에는 검찰이 동백지구 분양 업체 관계자들을 사법처리함에 따라 아파트를 분양받은 계약자들이 업체를 상대로 피해보상 소송을 잇따라 낼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법에는 소비자들의 피해를 직접 구제할 수 있다는 내용이 없지만 이번 수사로 담합의 정황 증거가 확보된 이상 입주자들이 행동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9월에는 써미트빌 입주 예정자들이 "분양사인 경기지방공사가 분양가를 높여 폭리를 취했다"며 감사원에 감사청구서를 냈고, 서해그랑블 계약자 모임도 건설사를 상대로 분양가 담합에 따른 손해 배상 소송을 준비 중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6월 참여업체에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업체들의 담합 때문에 분양가를 비싸게 내고 아파트를 분양받았다고 생각하는 계약자들은 민사소송을 통해 보상을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황성근.박원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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