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간 120억 투자 … ‘마약마을’ 바꾼 미 호텔사업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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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호텔 사업가 해리스 로젠은 플로리다의 가난한 흑인 마을 탄젤로 파크를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마을로 바꿨다. 21년간 1100만 달러를 투자했다. 2~4세 어린이집 과정을 지원하고 대학 진학 학생 전원에게 장학금을 줬다. 사진은 로젠이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와섭네트워크 웹사이트]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프리카 속담이다. 미국 호텔 사업가 해리스 로젠(76)의 신념이기도 하다. 그는 20여 년간의 투자로 3000여 명이 사는 플로리다 오렌지카운티의 작은 마을 ‘탄젤로 파크’를 바꿨다. 뉴욕타임스(NYT)는 26일 그가 이룬 ‘거대한 변화’를 소개했다.

 로젠은 뉴욕 맨해튼 빈민가에서 자랐다. 형제들 가운데 누구도 대학에 가지 않았다. 그만이 예외였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돈을 모아 명문 코넬대에 진학했다. 1974년 경제 침체기 헐값에 나온 플로리다의 호텔(여관)을 2만 달러에 인수해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그의 자산 가치는 5억 달러에 이른다.

 그는 스스로 신의 가호를 받고 미국의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했다. 보답하고 싶었다. 대학은 꿈도 못 꾸는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다른 부자들처럼 대학에 장학금을 내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을 전체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정한 곳이 탄젤로 파크다. 그가 처음 인수한 호텔 근처에 있는 마을이다. 20여 년 전만 해도 마약이 판치고 매매춘이 성행한 800여 가구의 흑인 밀집 지역이었다. 고등학생의 절반이 중도에 학교를 그만뒀다.

 변화를 위해 그가 주력한 부문은 교육이었다. 먼저 2~4세 유아에게 무료 어린이집을 제공했다. 4~5명을 돌볼 수 있는 어린이집으로 자기 집을 개조할 지역민을 모집했다. 자질이 부족한 지원자는 지역 대학과 연계해 유아 교육 과정을 따로 받도록 했다. 아이들이 먹고 놀고 자는 데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로젠의 금고에서 나왔다. 옆집에 어린이집이 있다 보니 부모들은 아이가 노는 걸 안심하고 지켜볼 수 있었다.

 지역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모든 이들에겐 장학금을 지급했다. 학점으로 기준을 두지 않았다. 2012년 이 지역 고등학생 전원이 졸업하는 등 고교 졸업률이 100%에 육박한다. 대학 진학률은 60%로 미국 평균 이상으로 뛰어올랐다.

 교육은 부모를 대상으로도 이뤄졌다. 빈민가에선 때로 부모들이 왜 배움이 필요한지, 학교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있다. 로젠은 지역 대학에 의뢰해 부모의 자세와 태도에 관해 교육했다.

 21년간 그가 들인 돈은 1100만 달러(약 120억원). 꾸준한 재정적 지원과 더불어 돈의 집행을 철저히 감독했다. 그간 매달 열리는 어린이집 이사회 모임에 두 번을 빼놓고 매번 참석했다. 수십여 차례의 장학금 수여식과 졸업식에도 얼굴을 비췄다.

 교육에 대한 투자는 마을 전체를 바꿨다. 오렌지카운티를 관할하는 경관 제리 데밍스는 “범죄율이 극적으로 떨어졌다. 더 이상 이곳을 순찰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은 ‘오아시스’ 같다”며 “다른 어떤 부자 동네보다 범죄율이 낮다”고 강조했다.

 이 지역의 부동산 가치도 상승했다. 20여 년 전 5만 달러 수준이던 평균 집값은 15만 달러로 세 배 상승했다. 이웃에서 이곳으로 전입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을 정도다.

 이 마을에 4대가 사는 조지아 고든은 “로젠을 우리 마을에 보내주신 신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의 딸은 로젠의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진학했고 손자와 증손자들은 그가 만든 어린이집에 다녔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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