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2> 제81화 30년대의 문화계 (75) 조용만 | 박태원과 이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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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때문에 나는 세번째 모이는 회합의 시간 전에 상허를 조용히 만나 의논하였다. 나도 탈퇴한 세사람과 함께 탈퇴하지 않나 하고 상허 당신부터도 그렇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나는 탈퇴하지 않겠다. 그러니 당신도 회를 깨뜨릴 생각하지 말고 우선 박태원·이적 두사람을 가입시켜 빈자리를 메우고 새로 출발하자고 하였다. 상허는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면서 박태원이나 이상이 다 좋으니 이번부터라도 빨리 가입시키도록 하자고 하였다.
이래서 상허는 자기가 회에 나가 지영·기림·무영한테 양해를 구해 놓을테니 나보고 두사람을 데리고 회장으로 오라고 하였다.
상허는 이상과는 구면이고, 박태원과도 인사는 없지만 호감을 갖고 있었다. 이상과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고 하니 이상이 「가톨릭 청년」 에 시를 내 지용과 알게 되었고, 다시 지용을 통해 상허를 졸라 중앙일보에다가 괴상한 시『오감도』를 발표하였는데, 이것이 시냐고 사내에서 말썽이 생겨 상허가 사표를 내느니, 어쩌느니 하고 작은 트러블이 있었으므로 이상을 알게 되었다.
나는 광교천변에 있는 박태원의 집에 가 박을 불러 같이 제비다방으로 가서 이상과 함께 구인회 회장으로 향하였다. 두사람은 소원성취한 셈이었으므로 좋아서 나를 따라왔다.
지용·기림등은 다 양해가 되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여러사람한데 두 신인회원을 인사시켰는데,초면에 박태원이 무슨 익살을 터뜨리자 상허는 기분이 좋아서 『글이 치렁치렁하더니 말도 치렁치렁 잘 하시는군!』 하고 10년의 지기를 만난듯 반겼다.
그 뒤로 이 두사람의 사이는 급속히 가까와져 상허가 문장지를 할때 박태원의 단편집 『구보씨의일일』을 출판해 주었고, 해방후에는 상허가 지용을 이끌고 좌익측 「문연」 의 대장노릇을 할때 박태원도 그리로 끌려 들어갔다.
이상과 태원은 둘 다 언변이 좋아 만담·재담을 잘하므로 어느 회합이고 이 두사람이 나타나면 웃음바다가 됐다. 두사람은 장단이 척척 맞아 서로 주고 받으면서 사람들을 웃겼다.
이날도 첫대면이고, 첫회합이건만 두사람의 재담으로 폭소가 터져 나와 회합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두 사람 다 직업이 없으므로 상허는 회의 소집, 장소의 선택등 모든 잡무를 맡아 해달라고 하였다. 이를테면 간사가되란 말인데, 두사람은 좋다꾸나하고 응낙하였다.
그뒤로 자주 회합을 열었고 두사람이 성의껏 회를 운영해 나갔으므로 일은 갈 되어 갔다. 「카프」측에서는 구인회가 조직되었다는 학예면기사가 나자 이기영이 댓바람에 소부르들의 망동이라고 욕설을 퍼부었지만 이쪽에서 아무런 대꾸가 없자 그뒤로는 다시 아무 말없이 잠잠해졌다.
좌익과는 달리 그때 조선일보학예부를 중심으로한 이원조·안회남등의 그룹이 있었는데,이들이 구인회를 헐뜯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었다. 어느때 회합을 마치고 다방에서든가 우리들이 나으는데 술에 취한 안회남과 부딪쳐 안이 자기를 구인회에 넣어주지 않았다고 우리들에게 욕설을 하면서 『너희들 내 주먹 맛좀 보련!』하고 권투식으로 주먹다짐으로 덤벼드는 바람에 우리들은 혼비백산해 도망친 일이 있었다.
그후 경성에서 이효석이 탈퇴하겠다는 편지가 자꾸 오고 어차피 이효석도 나갈바에는 나도 있을 맛이 없어 이효석과 함께 탈퇴해 버렸다. 회가 하마터면 깨질뻔 했었는데, 계속해서 탈없이 되어나가니 내 어깨는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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