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가 가르친 자비의 뜻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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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호 30면

하루는 부처님이 조용히 명상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이 흘러도 다투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부처님은 연유를 물었다.

사연은 이랬다. 한 비구가 다른 비구와 아주 사소한 일로 시비가 붙었다. 그 중 성격이 다소 괄괄한 한 비구가 큰소리를 지르며 상대를 몰아붙였다. 얼마 못 가 자신의 행동이 과했음을 깨닫고, 상대 비구에게 용서를 구했다. 조용히 듣고만 있던 상대 비구는 용서를 해주지 않았다. 단단히 마음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지켜보던 다른 비구들이 그 마음 상한 비구에게 ‘이제 그만 사과를 받아들이라’고 거들었음에도 그 비구는 고집을 피웠다. 이젠 사과와 용서를 두고 여러 비구가 서로 언성을 높이며 다툼이 커져 갔다. 이를 전해들은 부처님은 비구들을 모두 한자리에 불러 모은 뒤 타일렀다.

“잘못을 저지르고 뉘우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를 비는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잘못이다. 하지만 잘못을 뉘우치는 것은 훌륭한 일이며, 잘못을 비는 자를 용서해 주는 것은 더욱 훌륭한 일이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 나오는 이 일화를 통해 부처님은 비록 실수를 저질러도 진정으로 뉘우치는 게 중요하며, 그 뉘우치는 자에 대해 용서를 베푸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25일은 불기 2559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부처님이 자신의 삶과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신 ‘자비(慈悲)’의 의미를 함께 되새겨야 할 때다. 찰나에 불과한 우리네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고통은 집착에서 생겨나고 자란다. 재물의 축적과 성공에 대한 갈망, 자식과 가족에 대한 것도 모자라 심지어는 애정과 행복에 대해서도 집착한다. 이런 집착이 늘 우리를 고통의 바다(苦海)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얽어맨다.

이것이 어찌 개인의 삶 뿐이겠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역시 온갖 집착과 시기, 악의적 경쟁으로 어우러지고 부딪치면서 국민은 하루 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권력을, 재물을, 행복을 가진 자와 가지려 하는 자는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고, 다른 눈높이로 세상을 재단한다. 자기에게 집착하며 다른 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 골이 깊어지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힘들고 슬프다. 중생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가엾이 여기셔서 이를 해결하고자 이 땅에 오신 부처님의 자비가 점점 멀어져 자못 괴롭다.

인류의 역사는 어느 한 사람의 힘이 아닌 함께 만들어 가는 공업(共業)의 역사다. 너와 나 사이에 경계를 만들고, 다툴 게 아니라, 원래 우리(WE)였던 것처럼 서로 보듬고 용서해야 한다. 지금은 그런 때다. 부처님은 한 개의 초로 천 개의 초의 불을 붙일 수 있지만, 그 초가 빨리 타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하나의 초가 나누고, 또 보태어 광명의 세상, 정토(淨土)를 만들라는 말씀이다.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들은 국민이 용서하고 화합할 수 있게 앞서 가야 한다. 또 국민도 그들의 노력에 힘을 한데 모아주어야 한다. 서로 인정하고 자타불이(自他不二)의 바탕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사회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가장 먼저 나서야 하는 이들은, 국가를 경영하려는 사람들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가진 자들이다. 화합과 자비를 기다리는 국민이 통합에 나설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행여 실수를 저지르고 뉘우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용서해주고 새로운 삶을 꿈꾸게 해야 한다. 배고픈 이, 지친 이, 아픈 이들에게 밥을, 휴식을, 치유를 줘야 한다. 죄 짓고 반성하는 이에게 자비는 사회가 주는 가석방이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전해 주신 자비는 항하사(恒河沙, 항하강의 모래) 만큼이나 방편이 많다. 다만, 앞장선 이들이 그 길을 가지 않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올해는 모두의 마음속에 용서와 관용의 촛불이 켜지길 간절한 마음으로 계수(稽首)하며 발원한다.

정념 월정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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