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 100만개 빚어 이웃사랑 실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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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5일 오후 6시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양원리 산골 도로 변에 위치한 낡은 슬레이트 주택.

60대 할머니가 검정색 선글라스를 낀 채 밥상에 앉아서 만두를 빚고 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바가지에 수북히 담긴 만두소를 숟가락으로 퍼 만두피에 넣는다. 눈 깜짝할 사이 만두를 예쁘게 빚는 게 만두 전문점 주방장을 연상케 할 정도다.

남편(양승렬.67)과 함께 미인가 사회복지시설인 '한마음애 집'을 운영하는 '만두 할머니' 김정숙(64.1급 시각장애)씨. 1996년 10월부터 10년째 불우한 이웃에게 손수 만두를 만들어 전달하고 있다.

"앞이 안 보이는 것은 자그마한 불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르겠습니다. 여생을 만두봉사 활동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그는 31년 전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은 뒤 서울에서 의류사업을 하던 남편이 부도로 재산을 모두 날리게 되자 94년 5월 가족과 함께 민통선 인근 시골의 폐가로 이주했다.

겨울이면 얼어 죽은 배추가 밭에 무더기로 버려진다는 사실을 남편에게서 듣고 안타까움을 느낀 것이 만두 봉사의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는 언 배추를 가져다 김치를 담가 본 뒤 의외로 맛이 훌륭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공짜로 구한 배추로 담근 김치를 활용해 만두를 만들어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에게 전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호응은 뜻밖에 좋았다. 96년 겨울, 인근에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만두국을 대접하자 모두들 맛있어 하고 행복해 하는 것을 보고 본격적으로 팔을 걷고 나섰다.

"개성 출신인 돌아가신 시어머니께 배운 솜씨로 정성스럽게 만두를 만들었더니 다들 맛있다고 하던데요."

97년 12월에는 만두 100만개 만들기라는 야심찬 목표도 세웠다. 7년여 만인 지난해 6월 목표를 달성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혼자 사는 노인.장애인.영세민.소년소녀 가장.군인 등에게 사랑의 만두와 만두국을 전하며 따뜻한 이웃의 정을 나눴다. 1남 2녀의 자녀가 모두 장성해 독립하자 올 들어 만두 100만개 만들기 2차 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만두 사랑'에 큰 힘이 되어 준 것은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사랑의 만두빚기가 소문나면서 전국 각지의 교회와 여성단체, 군부대 등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봉사자가 찾아온 데다 만두재료를 지원해주는 후원자들도 줄을 이었다.

매월 그의 집을 찾는 자원봉사자는 평균 100여 명. 그는 이렇게 만든 만두로 한달이면 3~5차례 씩 전국의 장애인 시설과 양로원.고아원.군부대 등에 만두를 전달하거나 직접 만두국을 끓여 대접했다.

그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축사를 개조해 만든 집에 오갈 데 없고 몸이 불편한 노인 여섯 분을 모셔놓고 돌보고 있다.

김씨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잇따라 '만두 사랑' 사업에는 걱정이 없다"면서 "다만 오갈 데 없는 여섯 분의 노인들을 계속 모시려면 시설을 완비해 사회복지시설 인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걱정이라면 걱정"이라고 했다.

연천=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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