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문화교류 "주체성 상실할 우려" "우리민족문화 튼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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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최근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한일 문화교류」문제를 놓고 긍정론과 부정론이 맞서고 있다.
긍정론의 입장은 일반적으로 자신감에 근거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일본과의 교류에서 파생되는 충격과 부작용쯤은 쉽게 횹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본다.
이상회교수(연세대)는 『우리문화가 일본과의 교류를 증폭한다고 해서 곧 퇴색하거나 문화적 주체성을 상실할 허약한 문화가 아니며 일본과의 관계를 강화한다해서 주체성을 상실하고 일본에 동화될 쓸개빠진 민족도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변태섭교수(서울대)도 『이제 우리도 모든 면에서 일본과 대등한 입장에 설만큼 성장했다』면서 『우리문화도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는다면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긍정론을 펴는 논자들의 주장은 산발적이며, 그들이 말하는 「자신감」의 근거 또한 깊은 논의를 거치지 않아 확연히 드러나고 있지 않다.
한편 부정론의 논자들은 다발적이며 집중적인 논의를 펴고 있다. (이를테면 『오늘의 책』3호).
한일 문화교류에 대한 부정론의 쟁점은 크게 3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아직도 우리 스스로 일제잔재를 청산하지 못했고 민족적 주체성을 확립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영희교수(한양대)는 『지난4O년 간 이사회를 지배했던 상당수의 인물들은 자기의 반민족적 과거를 묻지 않는 외부세력이나 정책이라면 무엇이든지 환영하고 그 등에 업히기를 주저하지 않는 세계관과 인생관을 가졌다』면서 『우리 국민이 잊지 말았어야 할 역사적 교훈을 너무 쉽게 잊었고 용서하지 말았어야 할 일제잔재를 너무 쉽게 용서한데 오늘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유인호교수(중앙대)도 『지금이라도 주체성을 갖고 우리 내부에서 청산할 것을 청산한 후 그 다음 단계로 나가야만 상호오해가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종속으로 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둘째, 일본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분단고정화정책을 추진하는 세력이란 점을 들고 있다. 일본의 국익에 합당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일본에 가장 이상적인 한반도의 형태는 분단된 형태라는 게 일본의 기본입장이라는 것.
우리 민족의 분단극복을 위해선 현일본의 집권세력이 분열 대립하는 민족을 요리하는 명수들이란 점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논자중엔 한일 문화교류 촉진이 미국의 한일간 군사협력관계의 공식화를 위한 선행작업이란 주장도 띠고 있다.
세째, 일본이 수출할 수 있는 문화는 썩은 대중문화뿐이란 점을 내세우고 있다.
신용하교수(서울대)는 『일본이 서양자본주의 문명을 수입, 일본자본주의를 발전시키면서 배설해낸 악취나는 찌꺼기인 일본대중문화와 퇴폐문화를 「문화교류」란 아름다운 단어로 포장, 우리에게 수입을 강요하고있다』면서 『에로티시즘을 근간으로 한 일본 대중문화의 퇴폐성은 세계에서도 악명 높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논자들 의식의 바닥엔 문화상품이 공산품과 달리 그 나라의 모럴이나 가치관·「나라정신」같은 것을 끌고 들어온다는 우려와 경계가 짙게 깔려있다.
한일국교가 다시 열린지 내년으로 20주년을 앞둔 이 시점에서 이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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