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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 학생 중창단 화음 이끄는 부산 경찰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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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부산맹학교 중창단이 18일 부산경찰청 김준곤 수경(왼쪽)에게 노래를 배우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18일 오전 10시40분 부산 동래구 명장동 부산맹학교 음악실. 시력을 완전히 잃었거나 거의 없는 시각장애인 학생 10명이 손으로 벽을 짚으며 조심스레 교실로 들어섰다.

 파란색 셔츠를 입은 남학생은 동그란 책상에, 분홍색 셔츠 차림의 여학생은 네모난 책상에 앉았다. 이들을 기다리던 선생님이 학생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반갑게 맞았다.

 곧바로 피아노 반주가 시작됐다. 학생들은 반주에 맞춰 김효근의 ‘내 영혼 바람 되어’를 각자 파트에 맞춰 불렀다. “그곳에서 울지마오. 나 거기 없소, 나 그곳에 잠들지 않았다오.” 지휘를 맡은 선생님은 학생들을 위해 손가락으로 “딱딱”소리를 내며 정확한 박자를 들려줬다. 입으로는 “남학생들 더 크게, 더 자신 있게”를 외치며 노래를 이끌었다.

 학생들 사이에 앉은 4명의 다른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정확한 음정을 수시로 짚어주느라 애썼다. 20일 전국 시각장애인 중창대회에 참가하는 부산맹학교생들의 연습 모습이다.

 학생들을 지도한 선생님은 다름 아닌 부산의 경찰관 2명과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의무 경찰 4명이다. 군 입대를 위해 휴학한 부산대 성악전공 김준곤(22) 수경은 중창단 지휘를 맡았다. 호원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강은파(23) 일경은 반주를 했고, 호원대에서 보컬을 전공한 최동오(22)·김동성(22) 상경은 학생들의 음정을 고쳐줬다.

 경찰이 부산맹학교에서 중창단을 지도한 것은 지난 3월부터다. “음악으로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사회공헌활동을 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부산경찰청 홍보담당관실 정태운(37) 경감이 내면서 시작됐다.관할 동래경찰서 경찰들도 이에 동참했다.

 의경들은 전공과 재능을 살린 봉사라며 흔쾌히 노래지도에 나섰다. 부산맹학교를 담당하는 동래경찰서 여성청소년계 홍재봉(42) 경사와 이남연(44·여) 경위는 중창단에서 노래를 하며 학생을 지도한다.

 연습은 쉽지 않았다. 학생들이 앞을 볼 수 없어 악보는 무용지물이었다. 청각장애와 지적장애를 함께 가진 학생들이 있어 곡을 정확히 이해시키기도 어려웠다. 김 수경은 “노래를 불러주며 따라 부르게 하는 것 말고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큰 기대 없이 꾸려진 중창단이었지만 지난달 27일 열린 예선에서 38개팀 중 본선 10개팀에 포함됐다. 그러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번 해보자”는 자신감이 커졌다고 한다.

 이봉림(57·여) 부산맹학교 교사는 “학생들이 자신감을 가지면서 점심시간에도 틈틈이 연습을 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장애학생들에게 음악만큼 더 좋은 마음의 치료약은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본선 대회는 20일 오후 2시 부산시민회관 소극장에서 열린다. 곡 중 솔로 파트를 맡은 조정빈(15·여) 양은 “연습을 많이 했지만 1등을 바라지는 않는다”며 “대회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글=차상은 기자 chazz@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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