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임덕 정면돌파 승부수 되레 권력누수 부를 수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그러나 이것으로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는 사람은 여권 내에 거의 없다. 오히려 본격적인 구도 변화와 그에 따른 파워게임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인식이 강하다. 여권은 올 한 해 정권 재창출의 밑그림을 그려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여권의 환경에선 쉽지 않고, 결국 파괴 수준의 새판 짜기가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차원에서 이번 파문은 변화의 서막이 될 수 있다. 시나리오는 몇 가지로 압축된다.

◆ 친노-반노 그룹으로 양분=유시민 파문을 보는 각 계파들의 계산법은 복잡하다. 3~4개로 쪼개져 있던 당내 계파는 이번 파문으로 장기적으로 양분될 가능성이 있다. 참정연과 노 대통령 직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하는 친노그룹과 정동영계, 김근태계, 초.재선 의원들이 뭉치는 반노그룹이다. 친노그룹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선 어떤 구도 변화도 감내해야 한다는 쪽이다. 반면 반노그룹은 현재의 틀을 2007년 대선까지 유지하는 가운데 하나씩 복토를 해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당연히 이번 파문에 가장 민감한 쪽은 당내 다수파인 정동영계다. 유시민과 정동영계는 기간당원 문제 등을 놓고 사사건건 부닥쳐왔다. 당 고위 관계자는 "유시민을 끝내 장관으로 앉힌 대통령의 의도를 놓고 정동영계가 촉각을 세우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같은 흐름에서 정세균 의장의 산업자원부 장관 기용도 고도의 정치적 카드로 보는 시각이 있다. 개각 직전 당내에는 '2월 전대를 연기하고 정세균 의장이 5월 지방선거 때까지 당을 맡아야 한다'는 기류가 형성됐었다. 노 대통령은 정동영.김근태 두 장관의 퇴임인사를 받는 자리에서 똑같이 "전당대회에서 치열하게 경쟁하시라"고 주문했으나 "치열한 경쟁은 상처만 남긴다"는 판단에 양 계파가 공감한 것이다. 정 의장의 입각은 이를 무산시키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 열린우리당발(發) 정계 개편=두 진영의 싸움이 격해질 경우 상황은 예측 불허다. 딴살림을 차리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래서 나오는 게 분당 가능성이다. 열린우리당발 정계 개편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는 5월 지방선거를 전후한 개헌 논의와 맞물린다. 만약 분당까지 간다면 개헌 방향은 요동칠 수 있다. 정동영.김근태계와 한나라당 유력 대선 후보들은 대통령제를 고수하겠지만, 나머지 세력들은 합종연횡을 염두에 둔 내각제로 눈을 돌릴 수 있다.

내각제는 노 대통령이 지난해 하려다 실패한 대연정의 마지막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실제 청와대 내에서는 대연정 불발 후 제2의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돼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해찬 총리가 최근 "올해는 내각제를 포함한 개헌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 유시민 카드 강행한 노심(盧心)=그러나 이런 시나리오들은 이번 파문으로 노 대통령의 당에 대한 장악력이 급속히 떨어진다는 전제하에 나온다.

만약 이번 사태로 여당 의원들이 더 위축되고,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 오히려 강화된다면 상황은 정반대로 갈 수 있다. 실제 당내 반발이 단 하루 만에 진화되는 현재로선 이쪽으로 갈 가능성이 더 커보인다. 그래서 노 대통령의 '유시민 강행'은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

청와대에 정통한 한 의원은 "유시민 내정 발표 직전 청와대 최측근 참모들이 강력히 '유보'를 건의했지만, 대통령이 화를 낸 것으로 안다"며 "참모들은 여론을 봤겠지만, 대통령은 그들이 보지 못한 정치를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대통령의 계산은 두 가지일 수 있다. 첫째 대선 후보들이 당에 복귀하고, 집권 4년차에 접어드는 조기 레임덕 환경을 이번 사태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여당 내 대선 후보 그룹에 유시민을 추가함으로써 후보들 간의 무한경쟁을 끌어내고,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여당의 본선 경쟁력을 높여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어느 시나리오로 가더라도 노 대통령의 의도는 반영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또 다른 쪽에선 "정권 2년을 남겨둔 시점에서 던지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큰 승부수며, 오히려 급속한 레임덕을 자초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수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