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기상천외 공중도덕 벌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공중도덕을 바로잡으려면 본때를 보여야 한다."

홍콩에선 요즘 '도시 청결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기상천외한 벌칙이 속출하고 있다.

거리에 침을 뱉거나 휴지를 버릴 때 물리는 벌금을 9만5천원에서 24만원으로 올리는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취업이나 아파트 입주 자격에까지 불이익을 주는 '묘안'이 나오고 있다.

홍콩 정부는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 올 가을 다시 확산될 수 있다는 경고에 맞춰 '홍콩 환경개선'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그 중 개인별로 실시될 '공중도덕 벌점제'는 운전면허증 제도를 본뜬 듯 등골이 서늘할 정도다.

고층 아파트 건물에서 쓰레기를 던지면 7점, 쓰레기를 쌓아놓으면 5점, 빨래를 함부로 걸면 3점을 매긴다. 공공장소에서 침을 뱉은 행위는 '중죄'에 해당하는 7점이다.

벌점이 16점을 넘는 사람에 대해선 내년 8월부터 공공 아파트 입주자격을 뺏기로 했다. 임대료가 일반 아파트의 3분의1 수준인 공공 아파트는 부동산 값이 천정부지인 홍콩에서 서민들에겐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쉽게 말해 공공 장소에서 침을 뱉다 세번 걸리면 아파트에서 쫓겨나 온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을 판이다.

일반 가게들도 마찬가지다. 가게 앞 6m까지 청소를 해야 하고, 뒷골목엔 '양심 불량자'를 적발하기 위한 감시 카메라가 설치된다. 홍콩 정부는 공중도덕 위반자를 신고하면 1만6천원짜리 식권(食券)을 주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사실 홍콩 거리를 걷다 보면 침인지 물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를 머리에 맞는 경우가 적지 않다. 화가 솟구쳐 고개를 들면 수십층의 건물이 서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야경을 자랑한다고 하지만 뒷골목은 전혀 딴 세상이다. 그러나 현실이 아무리 그럴망정 이런 식의 공중도덕 바로잡기가 바람직할지는 의문이다. '법 위에 선 공중도덕'은 너무나 삭막하기 때문이다.

이양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