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진들 막바지까지 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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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일양국의 외무관계자들은 공동성명 문안을 놓고 막바지까지 줄다리기를 하다 7일 하오5시쯤에서야 가까스로 전체문안에 합의.
당초 정부는 공동성명을 합의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었다.
전두환 대통령의 방일이 확정되고 난후부터 『방일을 진심으로 환영한다』『한일간 신시대가 열린다』는 등 일본지도자들의 호의적인 발언이 계속됐고, 일 매스컴들도 같은 목소리로 친한 무드를 고조시켜 일본이 우리의 요구를 어느정도 들어줄 준비가 돼있는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막상 방일 1주일여를 남겨놓고도 현안해결에 일본측이 적극성을 보이지 않자 외무부 관계자들은 다급해졌다.
실무작업책임자를 김재춘 아주국장에서 이상옥 차관으로 격상시켰으나 공동성명전문을 방일 전에 타결짓지 못하고 현지까지 들고갈 수밖에 없었다.
한일양국간에 공동성명문안 협상이 시작된 것은 지난 7월 하순.
외무부는 협상초기에는 일본측이 공동성명을 생각하기도 전에 한국안을 만들어 일본측에 제시하는 기민성을 보였으나 막바지에 예기치 않게 일본이 버티는 바람에 난항을 겪었다는 얘기.
협상창구는 외무부와 주한일본대사관이 맡아 항목 항목별로 분리해 조정해 나가는 방식을 취했다.
일본측이 가장 난색을 표명한 문제는 ▲재일 한국인 처우 ▲기술이전 조항 ▲대북한 조항이었다.
한국정부는 한국의 원수로서 첫 방문이라는 점에서 60만 재일 동포에게 어떤 종류의 선물이라도 남겨놓아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최소한 지문날인 문제만이라도 해결되길 희망했었다.
그러나 일본측은 국내법을 개정해야한다는 이유로 맞서 결국 구체적인 개선책은 언급없이 재일 한국인 법적 지위조항을 상징적으로 넣고 「나까소네」수상이 오찬사에서 언급하는 선에서 타결했다.
기술이전문제도 일본측은 민간부문의 일이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였고 무역역조와 기술이전조항을 별개의 문제로 다루고자했다.
정부는 무역역조를 시정키위해서는 기술이전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세워 결국 같은 조항에 포함시키기로 합의했다.
가장 끝까지 합의가 안된 부분은 대북한 관계 조항.
우리는 일본의 대북한 정책이 변함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못박기 위해 이를 성명서에 넣을 것을 희망했다.
그러나 일본측이 국내 정치상의 어려움 등을 들고 나와 13개항으로 기대됐던 공동성명이 별도 대북한 조항의 탈락으로 12개항으로 조정됐다.
또 공동성명에 랭군사건 KAL기 피격사건 등이 거론은 됐으나 가해국인 북한과 소련의 명칭이 빠지게 됐다.
특히 한일기본관계 조항(3항)에서 65년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에 바탕을 둔다는 문귀 삽입여부로 논란이 있었다.
한일 기본조약3조에는 일본이 한국을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한다는 조항이 있는만큼 이를 다시 거론함으로써 일본의 대북한 교류억제를 다짐하자는 뜻이었다.
일본측은 상당히 난색을 표명하다가 우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번 공동성명에 새롭게 들어간 조항은 ▲남북한 유엔가입 ▲태평양지역협력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등 3개 조항이다.
남북한 유엔가입지지와 서울올림픽의 거론은 이 문제에 대해 일본이 외교적으로 협력을 한다는 뜻이 포함됐다는 설명이다.
공동성명에 일본측이 가장 강력히 반영되기를 희망했던 조항은 문화교류 조항.
한일간 문화교류위원회를 설치해 영화·대중음악 등 대중문화교류의 기반을 마련하자는 것이었으나 우리측의 시기상조·점진적 교류란 제동에 걸렸다.
작년1월「나까소네」일수상방한때 발표된 공동성명에서는 한일의 현안문제가 1개 조항으로 얼버무려져 넘어갔으나 이번에는 개별조항으로 분리된 것도 한 특색이다.

<문창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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