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가르쳐도 답답했다 … ‘훌륭한 스승’ 답 찾으러 전국 8336㎞ 뛴 선생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경기도 고양시 모당초등학교의 이경원 교사(가운데)가 담임을 맡고 있는 6학년 3반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이날 아이들은 종이와 찹쌀풀 반죽으로 한반도 입체 지도를 만들었다. 이 교사는 교과서 대신 본인이 만든 교재를 이용해 수업을 진행한다. [신인섭 기자]

13일 경기도 고양시 모당초 6학년 3반 교실. “오늘은 한반도 지도를 만들어볼 거야.” 1m88㎝의 장신이라 ‘키다리 선생님’으로 불리는 이경원(43·사진) 교사의 설명이 끝나자 아이들이 종이를 들고 교실 바닥에 앉았다. 각자 한반도 모양의 밑그림을 그린 뒤 찹쌀풀과 파쇄 종이를 섞어 붙이기 시작했다. 반죽을 쌓는 모양에 따라 산맥이 드러났다.

 “내 한반도는 너무 뚱뚱해.” “네 지도는 왜 그렇게 짧니?” “풀 느낌 정말 이상하다.”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이 교실에 가득 찼다. 이 교사는 아이들 사이를 오가며 질문을 받았다. “선생님, 제주도는 어디쯤 그려야 하나요?” 위치를 동그라미로 그려준 그는 “울릉도와 독도는 강원도일까 경상북도일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 수업은 사회와 미술 과목을 통합해 진행됐다. 교과서는 보이지 않았다. “사물함에 교과서가 있긴 한데 거의 안 봐요. 수업 땐 공책을 쓰거든요.” 박연찬(12)군이 보여준 공책엔 이 교사가 나눠준 인쇄물이 붙어 있었다. 아이들은 공책에 이날 배운 내용과 소감을 적었다. 수업이 끝날 때쯤 이 교사는 휴대전화로 아이들과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는 “매일 한 장씩 사진을 찍고 있다. 학년 말에 슬라이드를 보며 추억을 나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사는 같은 학년 교사들과 함께 학기 시작 전에 자체 교재를 만들었다. 교육부의 교과과정 지침은 반영하되 과목을 섞어 새로 만들었다. 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사용하는 일은 없다.

 이 학교 6학년 교실엔 시간표도 없다. 아이들의 반응과 수준에 따라 다음주에 무슨 수업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그에 따라 주말에 계획표를 배포한다. 자연스레 융합형 수업이 많아졌다. 광고를 배우는 국어 시간엔 급식 반찬을 소재로 영양소의 중요성을 알리는 광고를 만들어본다. 박시현(12)양은 “수업이 재미있어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말했다.

 광주교대를 졸업하고 1999년부터 경기 지역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이 교사는 2010년 교과서에 얽매이지 않은 수업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대학생이 된 제자가 찾아왔는데 과거 수업에서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다고 해 참담했다. 그때 수업 방식을 바꿔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연구년을 맞은 지난해에는 반년 동안 전국을 돌며 교사 68명을 만났다. ‘훌륭한 스승은 누구인가’라는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지인들로부터 추천받은 ‘소문난’ 교사들을 만나느라 8336㎞를 이동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대구 들안길초에서 만난 최혜경 교사의 수업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만화 캐릭터를 활용해 수학 퀴즈를 낸 뒤 잘못된 답을 말한 학생에게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라면서 다른 학생의 발표를 듣고 이해할 기회를 주는 모습에 감동받았다고 했다.

 여정을 마칠 때쯤 이 교사는 ‘스승이란 아이들을 돕는 존재가 아니다’는 결론을 내렸다. “돕는다는 표현엔 남의 일이란 인식이 포함돼 있는데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제가 만나 본 훌륭한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눈만 봐도 생각을 읽는 특징을 보이더군요.” 스승의 날을 이틀 앞둔 이날 수업을 마친 아이들은 한 명씩 이 교사와 손바닥을 마주친 뒤 하굣길에 나섰다. 이 교실에서는 매일 벌어지는 일이다.

고양=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