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과 외국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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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외국에서 온 뜨내기 여행자들이 한국에서 그 나라 말을 가르치며 융숭한 대접은 물론 때로는 개인적인 행운까지 잡는다는 외신보도는 우리의 외국어 학습 붐이 어딘가 비뚜로 나가고 있음을 단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외국어 학습은 선진 학문을 습득하고 우리국민의 해외 진출을 돕는 데에 그 근본목적이 있다. 따라서 학습의 장이 학교이건 사설 강습소이건 이 같은 근본 목적을 충족시킬 수 있는 유자격 교수·강사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사설 강습소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의하면 사실 강습소의 강사자격은 전문대학 졸업자 또는 이와 동등 이상의 학력을 가진 자로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 시행령은 외국인에 관한 한 그 학력을 증명할 길이 모호해 별다른 효력을 발생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최근 한국의 외국어 학습 붐을 타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강사로 일하는 외국인들의 경우 그 교양수준은 물론 언어교육 기술에 있어서 과연 얼마나 적합한가 의심이 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 뜨내기 외국인들은 본국에서도 별로 하는 일 없이 지내다가 간신히 비행기 값만 마련, 일단 입국만하면 외국어 강습을 통해 숙식과 관광에 필요한 돈을 거뜬히 번다는 것이다. 일부 파리지앵들이 한국을 노다지로 여기고 있다는 르몽드지의 보도는 저간의 사실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외국말과 글을 배운다는 것은 어느 정도 그 나라의 문화와 정신도 함께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이렇게 배우는 외국어 학습이라야 진정한 교육효과를 나타낸다. 회화를 중시한다고 교사·강사의 교양수준을 가리지 않고 단지 그를 인간녹음기로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결국 회화를 배운다고 하다가 그 나라의 저속 문화, 저속 언어생활, 저속한 가치관까지 흉내낼 우려가 없지 않다. 교육방법에도 문제가 있다.
아울러 외국어 학습에는, 끊임없는 대화와 반복, 교정이 필요하며 해당 외국어의 정통문법도 아울러 교수 받아야 한다. 외국 여행자들이 과연 이 같은 학습방법을 완전히 익힌 사람들이라곤 믿어지지 않는다. 이럴 때는 틀린 외국말을 배울 염려도 있다.
사설 강습소·기업체·일부 가정이 이런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피부색과 눈빛이 다른 외국인이면 누구나 좋다는 식의 무분별 학습 열을 보이고 있는 것은 정작 외국어교육의 마이너스 효과 밖에 없다.
또 그 때문에 초래되는 문화국민으로서의 이미지 실추는 외국어습득에서 얻는 효과를 상실하고도 남음이 있다.
당국은 1차로 사설 강습소의 강사자격 요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난 3월에도 무자격 강사를 채용한 외국어학원 몇 군데가「휴관」등 행정처분을 받은 일이 있었다. 필요하다면 법개정을 통해서라도 일정한 지식·교양 수준과 교육방법을 익히지 못한 강사의 채용을 막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외국어 학습에 뜻을 둔 국민들은 자격 있는 선생 아래 정확한 외국말과 글을 배우는 것이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뜨내기 외국인에게서 배우는 외국어는 오히려 비능률적이고 효과도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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