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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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유난히 초저녁 잠이 많은 아이들이 TV에서 9시 시보가 울리도록 놀고 있는 것이, 아마 방학을 한 탓인가 보다 어기며 아이들 방읕 들여다보니 딸애가 책상에 엎드린 채 잔뜩 졸린 눈으로 『엄마, 아직 30분 남았어요』한다.
오후 내내「아톰」이 사는 궁전을 만든다며 화장품 병을 모조리 쓸어가 이리 저리 맞춰보던 막내는 아예 궁전 옆에서 반쯤 잠든듯하다. 의아해하던 나는 그제야 이유를 알아차리고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방학 전날, 학교에서 선생님과 같이 생활 일과표를 만들었다며 벽에다 붙이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내가 어릴적에 계획만 잔뜩 세워놓고 제대로 실천에 옮기지 못했던 기억이 있기에 무심히 지나쳤는데, 오늘 새벽 물소리에 잠을 깨보니 깨우지도 않은 아이들이 일어나서 세수를 하느라 야단들이었다. 좀 있으니 이번에는『야! 체조시간이다』하며 밖으로 뛰어나간다.
베란다로 내다보니 둘이서 아파트 마당을 돌고있었다. 그제야 일과표를 들여다봤더니 6시에 일어나서 7시에 아침밥을 먹도록 되어 있었다.
오후가 지나는 동안 우리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졸음을 참고 있는 저 천진함이라니.
『9시에 잠들었는지, 9시반에 잤는지 선생님께서 어떻게 아시겠니. 잠이 오면 그냥 자도록 해야지.』
목구멍까지 나오는 말을 꿀꺽 삼키며, 이럴 때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엄마일는지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경남김해군진영읍 부평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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