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컬럼] 어떤 나라도 법만으론 살 수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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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호 15면

내가 한국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했을 때의 이야기다. 세 차례나 떨어진 후에야 겨우 면허를 받을 수 있었다. 운전면허 시험에서의 거듭된 불합격은 미국에서 이미 베테랑 운전자였던 내게 좌절을 안겨줬다. 재시험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도 적지 않게 들여야 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운전면허를 따는 것은 쉽지 않다. 나처럼 면허시험에서 여러 차례 낙방한 외국인은 적지 않다. 특히 도로주행시험은 매우 까다롭다. 교차로 정지신호에서 멈추고, 횡단보도를 침범하지도 않았는데 작은 실수 등으로 인해 탈락의 고배를 마시곤 한다. 아마도 한국 도로의 교통상황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운전면허를 땄을 당시의 기쁨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시험장에서 눈물을 흘렸던 중국 청년의 얼굴도 기억에 새롭다. 그는 당시 다섯 번이나 낙방했다고 한다.

하지만 까다로운 면허시험과는 달리 실제 도로에서 운전할 때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물론 교통체증과 난폭운전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적어도 교통법규 위반으로 적발되지 않는 요령은 쉽게 터득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운전자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불법 U턴, 과속, 차선 위반,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 끼어들기 등 수없이 많다. 심지어 횡단보도를 침범하는 차량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은 적발되지 않는다. 당국은 주로 교통 감시카메라에 찍힌 법규 위반 차량에만 벌금을 부과하기 때문이다. 교통체증이 심할 경우에는 교통경찰도 사소한 법규 위반을 눈감아 준다. 이 때문에 한국의 교통법규 위반의 상당수는 감시카메라에 의해 적발된다. 이 또한 약점이 있다. 감시카메라가 대부분 상당기간 한 곳에 고정돼 있기 때문이다. 같은 도로를 두세 번 주행해 본 운전자들은 그 위치를 쉽게 기억한다. 운전자들은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지점에서만 조심하면 그만이다. 다른 구간에서는 운전자의 양심에 따라 법규 준수 여부가 결정된다.

교통법규와 마찬가지로 한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법에 따라 규제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인간의 양심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지난해 4월 발생했던 세월호 침몰도 법과 양심이라는 두 가지 잣대를 가지고 분석할 수 있다. 사고 당시 선장은 고등학생을 포함한 수백 명의 승객을 배에 남겨둔 채 가장 먼저 구명정에 올랐다. 이 때문에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국민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양심을 저버린 행위 때문이다.

법적인 측면에서 볼 때 세월호 사건의 원인은 과적이다. 제대로 고정장치를 하지 않은 채 차량을 너무 많이 실었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이 관점에서는 관계 당국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감독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정해진 규정에 맞게 화물을 선적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허위로 작성된 화물 서류를 제대로 적발하지 못했던 것도 참사의 주된 원인이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세월호 사건은 과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생생히 보여준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교훈이 될 것이다. 또 적어도 한국에서 선박의 과적은 앞으로 없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세월호 침몰을 비롯한 많은 대형 사고를 강력한 법 규제만으로 예방하기는 쉽지 않다. 행정력이 미세한 곳까지 미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법적으로 미진한 부분은 인간의 양심이 채워줘야 건전한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 이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지가 우리에게 던져진 과제인 것이다.



버틸 피터슨 보스턴글로브 등 미국의 주요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이집트 미국상공회의소가 발간하는 ‘월간 비즈니스’ 편집장을 지냈고 현재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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